라파엘 전파

라파엘 전파

다른 표기 언어 Pre-Raphaelite Brotherhood

요약 왕립 아카데미의 역사화가 상상력도 없고 너무 인위적이라고 여기고 이에 반발하여 1848년에 젊은 영국 화가들이 결성한 단체.

이들은 새로운 도덕적 진지함과 성실함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애썼다. 14, 15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얻었고, 라파엘 전파라는 이름도 성기 르네상스 이전, 특히 라파엘로 시대 이전 이탈리아 미술의 전형적 특징이었던 솔직하고 단순한 자연묘사에 대한 찬양을 나타내기 위해 붙인 것이다.

라파엘 전파 협회는 왕립 아카데미에 다니던 3명의 학생이 1848년에 결성했다. 그 3명은 화가일 뿐 아니라 재능이 뛰어난 시인이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였는데, 모두가 채 25세가 되지 않은 젊은이였다. 화가인 제임스 콜린슨, 화가이자 비평가인 F. G. 스티븐스, 조각가인 토머스 울너, 그리고 비평가인 W. M. 로세티(단테 가브리엘의 동생)도 권유를 받고 이들과 합세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화가인 윌리엄 다이스와 포드 매독스 브라운도 라파엘 전파 양식을 선구적으로 구사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즉시 매우 설득력있고 의미심장한 작품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종교와 중세를 주제로 다룬 그들의 그림에는 15세기 피렌체와 시에나 미술의 깊은 신앙심과 순박하고 꾸밈없는 솔직함이 엿보인다. 헌트와 밀레이가 보여준 화풍은 선명하고 화려한 조명, 깨끗한 분위기, 세부까지 거의 사진처럼 묘사한 정밀함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또한 성서와 중세문학을 주제로 그리면서 개인의 시적 상징을 도입할 때가 많았다. 로제티의 작품은 희미한 윤곽, 좀더 조각적이고 암시적인 명암 표현, 흐릿하고 몽상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는 달랐다. 활기차고 참신한 시각은 라파엘 전파의 초기 그림들이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특징들이다.

협회는 처음에는 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모든 작품에 라파엘 전파 협회의 약자인 'PRB'로 서명을 하여 함께 전시했다. 1850년에 그들의 정체와 젊은 나이가 밝혀지자, 그들의 작품은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들이 아름다움의 전통적 이상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철저한 사실주의로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 것은 불손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의 유력한 미술 평론가인 존 러스킨은 라파엘 전파의 작품들을 강력히 옹호했고, 그외에 이 단체 회원들의 후원자도 있었다.

라파엘 전파 협회 회원들은 1854년부터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개별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화풍은 1850년대와 1860년대 초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모방했다. 1850년대말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자기보다 젊은 화가인 에드워드 번 존스 및 윌리엄 모리스와 사귀면서 감각적이고 거의 신비주의적인 낭만주의에 가까워졌다. 라파엘 전파 협회 회원들 가운데 기법적으로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밀레이는 왕립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었다. 헌트 혼자만이 거의 평생 똑같은 표현 양식을 추구하면서 라파엘 전파의 원칙에 끝까지 충실했다.

라파엘 전파 운동의 후기 단계는 번 존스의 그림에 요약되어 있는데, 그의 그림들은 약간 진부하지만 서정적인 중세풍에 감각적인 느낌이 종종 가미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