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페

뒤페

다른 표기 언어 Guillaume Dufay
요약 테이블
출생 1400경
사망 1474. 11. 27, 프랑스 캉브레 주교구 캉브레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유명한 교회음악과 일반 세속 음악 작곡가.

1409년 캉브레 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다가 1420년경에는 리미니에 있는 카를로 말라테스타 성가대, 1428년에는 로마 교황청 성가대에 들어갔다. 1426년 캉브레의 참사회원이 되었고, 사보이 공작과 7년을 함께 보냈으며, 1440년경부터 캉브레에 살면서 교회음악을 총감독했다. 1445년경 교회법 연구로 학위를 취득했고, 1446년 몽스의 참사회원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87곡의 소네토, 59곡의 샹송, 7곡의 이탈리아 칸초네, 7곡의 미사곡 전곡, 25곡의 미사곡 부분 등이 남아 있다. 포부르동(fauxbourdon) 기법을 빈번히 사용했고, 이 기법의 창시자로 추측된다. 포부르동 기법은 영국 디스칸트(descant)라는 즉흥 가창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3도, 6도 음정의 병진행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의식용 모테토를 여러 곡 작곡하였는데, 그중에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선출(1431)이나 비테르보 조약(1433),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헌정한 것(1436) 등을 기념하는 곡들도 있다. 예루살렘을 대탈환하기 위한 십자군운동을 다시 시작할 생각으로 1454년 부르고뉴의 선량왕 필리프가 개최한 찬란한 '꿩의 축일'을 위해 뒤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위한 애가를 작곡했다. 보통 3부로 되어 있는 그의 샹송은 봄·사랑·애수 같은 주제를 다루었고, 대부분 발라드나 론도, 비를레(virelai) 같은 시·음악 형식을 사용하였고 몇 곡은 자유형식으로 쓴 것도 있다.

그의 미사곡은 15세기 하반기 미사곡의 빠른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의 미사곡 전곡은 4부로 되어 있으며, 테너에 정선율을 사용했다. 그는 또 〈무장한 남자 L'homme armé〉, 발라드 〈내 얼굴이 창백하다면 Se la face ay pale〉과 같은 세속적인 성악곡이나 〈아베 레기나 코엘로룸 Ave Regina coelorum〉과 같은 종교곡에도 정선율을 썼다. 캉브레에 있는 동안 작곡한 작품에서 그는 '영국 양식'에 의한 부드러운 화성을 유럽 대륙의 음악양식에 융화시킴으로써 우아하고 표현미 넘치는 양식을 완성했다. 마르탱 르 프랑이 쓴 〈Le Champion des Dames〉(1440경)에 의하면, 그는 이 '영국 양식'을 존 던스터블로부터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중세 후기 음악과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네덜란드 악파 작곡가들의 양식을 한데 접목시킴으로써, 부르고뉴 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양식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