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도쿄

다른 표기 언어 Tokyo , 東京
요약 테이블
위치 일본 혼슈 동부
인구 14,049,146명 (2022년 추계)
면적 2,190.93km²
언어 일본어
대륙 아시아
국가 일본

요약 일본의 수도. 혼슈의 거의 중앙인 간토 지방 남부에 위치하는 중심지역과 태평양상으로 뻗은 이즈·오가사와라 제도로 구성된다. 지형은 북서쪽에서부터 동남쪽으로 간토 산지, 다마 구릉, 무사시노 대지, 아라카와 강, 에도 강 등과 그 지류의 충적저지 순으로 도쿄 만을 향해 계단상으로 낮아진다. 인간 거주의 역사는, 이타바시 구의 모로 유적 등의 간토롬 층에서 발굴된 석기에 의해 1만 년 전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쿄
도쿄

도쿄 도는 혼슈[本州]의 거의 중앙인 간토[關東] 지방 남부에 위치하는 중심지역과 태평양상으로 뻗은 이즈[伊豆]·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로 구성된다(→ 도쿄-요코하마 대도시권). 육지부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지바[千葉]·야마나시[山梨]·가나가와[神奈川]·사이타마[埼玉] 현과 접하고 있다.

표준 경위도는 미나토구[港區]의 옛 도쿄 천문대 자리 북위 35° 39′ 16″, 동경 139° 4′ 41″이다. 행정구역은 23특별구(特別區)·26시·7정(町)·8촌(村)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도쿄라고 할 때 23특별구만을 일컫는다. 면적은 오사카 부[大阪府], 가가와 현[香川縣]에 이어 3번째이나 인구는 일본 전체의 약 9.6%를 차지하여 가장 많다.

도쿄 도는 일본의 수도로서 정치·외교의 중심인 동시에 인구뿐만 아니라 산업·문화 등의 최대 집중도시이다. 이와 같은 기능 집적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국제화·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1980년대 이후 모든 기능의 중추가 되어 명실공히 일본의 '두뇌'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제적 지위향상으로 국제 금융도시로서 세계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도
도쿄

자연환경

도쿄의 지형은 북서쪽에서부터 동남쪽으로 간토 산지, 다마[多摩] 구릉, 무사시노 대지[武蔵野臺地], 아라카와 강[荒川], 에도 강[江戶川] 등과 그 지류의 충적저지(沖積低地) 순으로 도쿄 만(灣)을 향해 계단상으로 낮아진다.

이러한 계단상의 고도 분포는 각 지형의 형태적 특성뿐만 아니라 각 지형을 구성하는 지층과 형성 시기에도 명확한 차이가 있다. 간토 산지는 해발고도 1,500~2,000m의 장년기 산지로서 고생대·중생대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쿄 도의 서쪽 경계에 있는 구모토리 산[雲取山:2,018m]이 최고봉이며 다마 강[多摩川]과 그 지류인 아키가와 강[秋川] 등에 의해 침식되어 다마 계곡과 아키가와 계곡이 형성되었다. 하천 양쪽에는 하안 단구가 여러 단계 발달하여 중요한 생활무대가 되었다(도네 강).

간토 산지의 동쪽은 해발 100~200m 정도의 다마·가스미[加住]·구사하나[草花]·가지[加治] 구릉이 이어지나, 사야마[狹山] 구릉만이 고립되어 있다.

이 구릉은 주로 제3기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정상부에 평탄면이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다마 구릉은 신도시 건설로 평탄화되었고, 사야마 구릉 내의 침식곡은 상수도용 댐 건설로 다마 호(湖)가 생겨났다. 무사시노 대지는 서쪽의 오우메 시[靑梅市] 부근은 해발 150m 정도이지만 대지 동쪽은 해발 20m 내외로 완만하게 낮아지며 다마 강의 오랜 선상지면이다. 대지는 충적세의 사력층(砂礫層)으로 구성되고 간토 롬(loam)으로 불리는 화산회토로 덮여 있다.

대지 중앙의 해발 50m 부근에는 샤쿠지이[石神井]·젠푸쿠지[善福寺]·이노카시라[井之頭]등 용천(湧泉)이 남북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으나 그밖의 지역은 일반적으로 지하수가 깊다. 따라서 수리(水利)가 용이하지 못해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이 대지의 동단부에는 위에서 언급한 용천에서 발원하는 많은 하천에 의하여 침식곡이 형성되었다.

그결과 혼고 대[本鄕臺], 도시마 대[豊島臺], 요도바시 대[淀橋臺], 메구로 대[目黑臺] 등 작은 대지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야마노테[山の手] 대지이다. 이 야마노테 대지는 높이 약 20m의 벼랑에 의해 충적저지와 구분된다. 이 충적지역은 과거의 대지가 아라카와 강의 하류인 스미다 강[隅田川], 나카가와 강[中川], 에도 강에 의해 침식곡이 형성되었고 그후 해면 상승에 의해 생긴 충적지이다.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해발 4m 이하의 극히 저습한 지형면으로 동부 에도 강 하류의 삼각주와 매립지, 그 서쪽에 시타마치[下町] 저지, 그리고 남단 부근 다마 강 하류의 삼각주와 매립지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스미다 강 동쪽의 고토[江東] 지역에는 해수면보다도 낮아 '제로미터 지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지역은 메이지 시대 이후 지나친 지하수 개발에 의한 지반침하 결과 생긴 것이다. 저지의 충적층의 깊이는 수m에서 수십m에 달하고 이 충적층 밑에는 홍적층인 도쿄 층이 있다.

도쿄의 도서부인 이즈·오가사와라 제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상의 화산제도이다.

이즈 제도는 활화산인 미하라 산[三原山]이 솟아 있는 오시마 섬[大島] 등 이즈 7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로 후지[富士] 화산대에 속한다. 지질은 제4기의 현무암 또는 안산암으로 구성되며 원추형 화산이다. 한편 오가사와라 제도는 북위 27° 부근에 있는 30여 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이 2개의 제도는 화산도이므로 평지가 거의 없고 물도 부족하며, 해안은 해식애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산업발전에 큰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파괴되지 않은 수려한 자연미와 온화한 기후 때문에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여름에 고온다우하고 겨울에 비교적 한랭건조하며 계절풍과 태풍의 영향이 큰 태평양 연안기후를 보인다.

1월평균기온 4.7℃, 8월평균기온 26.7℃, 연평균기온 15.3℃, 연강수량 1,503㎜이다. 1년에 2번의 우기(6~7월, 9~10월)가 있으며, 보통 2~3차례 태풍의 영향을 받는다. 도쿄 도의 기후는 일본에서도 가장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겨울철에 교외보다 2~3℃가 높은 도심지역은 일본에서 도시기후가 가장 두드러진 곳이며, 무사시노 대지는 평야기후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또 간토 산지는 국지성이 강한 산악기후로 고도 및 지형적 영향으로 강수량은 많으나 기온이 낮다.

이즈·오가사와라 제도는 온난다우한 해양성기후로 겨울 계절풍과 태풍이 대단히 강하며 특히 오가사와라 제도는 아열대성 기후로 연평균기온은 18.1℃, 연평균강수량은 3,824㎜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심부·평야·산지·도서 등 다양한 기후를 가진 부(府)나 현(縣)은 일본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육지부 특히 시가지는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배출된 매연이나 유해 물질, 자동차 배기 가스 등에 의해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이상과 같은 자연환경을 가진 도쿄 도의 자연재해로는 저지대의 하천 범람, 태풍 때의 해일로 인한 수해, 지진 피해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제로미터 지대'를 중심으로 한 저지에서 피해가 크다.

연혁

도쿄에 있어서 인간 거주의 역사는, 이타바시 구[板橋區]의 모로[茂呂] 유적 등의 간토롬[關東 loam] 층에서 발굴된 석기에 의해 1만 년 전으로 밝혀지고 있다.

4세기 후반경에는 소호족(小豪族)이 군림했으나 5~6세기경부터 야마토[大和] 정권의 세력이 미쳤다. 야마토 정권은 6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치바나[橘花]·오이[多氷]·구라스[倉樔]·요코누[橫渟] 등 4개의 미야케[屯倉:후에 郡으로 됨]를 설치했다. 그후 645년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에 따른 율령제도의 제정으로 도산도[東山道]의 하나로서 무사시노 구니[武蔵國:國은 고대 일본 행정구역의 하나]가 설치되었다.

8~9세기에 장원과 목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그 하급 관리자로부터 신흥 무사가 출현했다. 939년의 마사카도[將門]의 난은 신흥 무사와 구 토호가 교체되는 무사시노 구니는 설치 당시 19개군으로 구성되었으나 후에 귀화인(歸化人)의 증가로 716년에 고마 군[高麗郡]이, 758년에 시라기 군[新羅郡]이 신설됨으로써 전국에서 2번째로 큰 21개 관할 군을 거느린 대국이 되었다.

그후에 무사시노와 시모우사[下總] 간의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771년 도산도에서 도카이도[東海道]로 전속되었고, 다나야[店屋]-오다카[小高]-오이[大井]-도시마[豊島] 4개 역을 지나는 시모우사에서 이노우에[井上]에 이르는 역로가 정비되었다.

그리고 진다이 사[深大寺], 센소 사[淺草寺] 등의 사찰이 창건되면서 불교가 보급되었다. 고대 무사시노구니의 성장은 고마·시라기 군의 설치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사람, 소위 도래인(渡來人)의 역할이 컸다. 또 사찰이나 지방관청의 건립을 통한 건축술과 목축·양잠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무사시노 구니의 중세사회는 목장·장원을 기반으로 한 무사(武士)들의 발흥으로 시작되었다. 무사시노 구니에는 병부성(兵部省)과 좌마요(左馬寮) 등의 관영 목장이 있었고 그 관리인으로는 그 지역 토호가 임명되었다.

8~9세기에 장원과 목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그 하급 관리자로부터 신흥 무사가 출현했다. 939년의 마사카도[將門]의 난은 신흥 무사와 구 토호가 교체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지치부[秩父]의 목장관리인 출신인 지치부 나가히라[秩父流平] 일족 등은 무사시노 7당[武蔵七堂]과 함께 11세기말에서 12세기초에 걸쳐 장원과 목장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웠다.

그 외에 에도 장원[江戶莊園]의 에도 일족과 도시마 장원[豊島莊園]의 도시마 일족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192년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에 의하여 세워진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는 무사시노 구니의 행정소재지인 고쿠후[國府]를 현재 도쿄 도의 후추 시[府中市]에 설치하고 호조 씨[北條氏] 일족을 무사시노구니의 가미[守:수령]로 임명했다. 그리고 가마쿠라 가도의 정비와 황무지 개간, 호수와 제방의 보수, 다마[多摩] 강변의 수전(水田)개발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바쿠후의 적극적인 무사시노 통치 정책하에 에도·도시마 및 가사이[葛西] 3씨 일족이 순조롭게 세력을 확장해갔다. 그러나 14세기의 남북조(南北朝) 내란기를 거치면서 에도·도시마 일족은 오타 도칸[太田道灌]의 진출로 세력을 잃게 되었다.

무사시노 구니의 세력을 잡은 오타 도칸은 1457년 에도 성을 축조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다. 그결과 무사시노 구니의 중심지는 후추에서 에도로 옮겨지고 에도는 무사시노·사가미[相模]·고즈케[上野]의 중심지로서 조카마치[城下町]가 되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타 도칸은 1486년 상관인 우에스기 사다마사[上杉定正]에게 살해됨으로써 우에스기 일족이 그후 30년 동안 3대에 걸쳐 에도 성을 지배하게 되었다.

우에스기 일족의 지배도 1524년 호조 우지쓰나[北條氏綱]의 공격으로 끝이 나고, 에도 성은 그후 67년간 4대에 걸쳐 호조 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호조 일족은 에도 성을 도야마[遠山]에게, 다키야마·하치오지 성[瀧山八王子城]을 호조 우지야스[北條氏康]의 둘째 아들에게 각각 맡겨 통치하도록 했다.

한편 관할구역을 측량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했으며 역원제도도 신설했다. 덴쇼 기[天正期]에는 각지에 로쿠사이이치[六齋市:5일 정기시장]를 개설하는 등 에도는 호조 일족의 지배기간 동안에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이러한 호조 일족의 통치도,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공격으로 에도 성과 다키야마·하치오지 성이 함락되고 호조 우지테루[北條氏照]가 형인 우지마사[氏政]와 함께 자결함으로써 끝이 났다.

호조 일족을 격파한 히데요시가 무사시노·사가미·고즈케·이즈[伊豆]·시모우사[下總]·가즈사[上總] 등 6개 구니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통치하도록 함으로써 이에야스가 에도에 입성했다.

당시의 에도는 오타 도칸 통치시대의 번영은 사라지고, 시가지에도 100호 정도의 초가만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에야스는 에도를 간토 8개 구니의 중심지로 개발하기 위해 저습지를 매립하고 주택지를 조성했으며 교랑 등을 가설했다.

1603년 세이이다이 쇼군[征夷大將軍]이 된 이에야스는 에도 바쿠후[江戶幕府]를 세우고, 휘하의 다이묘[大名]에게 가도를 정비하도록 했다. 에도 시가지의 기본 골격은 'の'자 형태였다. 그의 적극적인 개발사업 추진으로 에도는 정치적 중심지뿐만 아니라 대소비도시로서 급격한 발전을 했다.

그결과 1700년대 초반에 이미 인구 10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는 구(舊)바쿠후 세력의 장악과 옛 수도로부터의 탈피라는 정치적 의도에서 에도를 수도로 선정했다. 교토[京都]로부터의 천도와 함께 교토보다 동쪽에 있는 수도라 하여 1868년 도쿄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앙집권적인 절대주의적 덴노제[天皇制]의 신생 일본 수도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868년 에도 시대의 조카마치[城下町] 구역이 도쿄 부가 되고 부 내에 15개 구가 설치되었다. 1878, 1880년 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의 도서부가 편입되었으며, 1889년의 시제(市制) 실시로 15개 구가 도쿄 시가 됨에 따라 도쿄는 도쿄 시와 도쿄 부로 2중 행정체제가 되었다.

또 1893년에 3다마 지구, 즉 니시[西]·미나미[南]·기타[北] 다마군[多摩郡]이 도쿄 시의 상수도원 확보와 다마 지구의 자유민권운동의 억압을 위하여 도쿄 부로 편입되었다.

한편 시가지도 시타마치에서 야마노테, 고토 방면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으로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으나, 재건과 더불어 교외 전철을 따라 주택지의 교외확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교외로의 도시화 진전으로 도쿄 시는 1932년 주위의 5군(郡) 32정·촌(町村)을 합병하여 35개 구가 되었다.

당시의 인구는 566만 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3년 수도 방위와 부·시(府市)의 2중 행정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쿄 부와 도쿄 시를 통합하여 도쿄 도로 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대공습에 의해 77만 호의 가옥이 파괴되는 등 구부(區部)의 반 정도가 파괴되었다. 그후 복구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3다마 지구로의 이주가 활발하여 구부는 재편성되어 1947년에 23구가 되었다.

이 23구는 특별 지방공공단체로서 시와 거의 같은 자치권을 갖는 특별구이다. 3다마 지구는 도시화 진전에 따른 시제(市制) 실시 지역의 증가로 26개 시가 생겨났고, 또 1968년에는 종전 후 미군 점령하에 있던 오가사와라 제도가 재편입됨으로써 도쿄 도는 현재 23특별구·26시·7정·8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20년 제1회 국세조사 때 인구는 369만 9,428명이었으나 1962년에 1,000만을 넘어섰고, 1965년에는 1,086만 9,244명에 달했다.

그후 인구 과잉집중에 따른 생활환경의 악화, 지가(地價)의 앙등에 따른 주택난, 수도권정비법에 기초한 공장과 학교의 신설·증설 억제 등에 의하여 1980년에는 인구가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5년에 다시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는데 1980~85년의 인구증가율은 1.8%로 전국 평균 3.4%에 비하면 훨씬 낮다. 도쿄 도의 인구밀도는 5,482.1명/㎢(1989)으로 전국 최고이며, 최저의 홋카이도[北海道]와 비교하면약 80배 정도이다.

남녀비는 전국적으로 여자 비율(인구성비 96.7%)이 약간 높으나 도쿄는 반대로 남자의 비율(인구성비 102.0%)이 약간 높다. 1990년 현재 특별구부 인구는 804만 6,180명이며 정체된 상태이다. 구부 인구를 포함한 시부 인구는 1,147만 4,749명, 정(町)인구는 14만 7,895명, 촌의 인구는 1만 6,670명이며 도시 인구비는 99.9%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하고 있다.

도심부는 사무관리와 상업 기능의 중심지로서 밤에는 인구가 적다.

1935년에는 지요다[千代田]·주오[中央] 2구, 1940년에는 미나토구[港區]를 포함하여 야간인구 감소가 현저한 도심 3구로 불렸다. 그후에도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1980년에는 23구 중에서 19구가 야간인구 감소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1985년 도쿄 도의 인구 재증가에 힘입어 에도가와[江戶川]·아다치[足立]·가쓰시카[葛飾]·이타바시[板橋] 4구의 인구는 증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도심부의 인구는 대체로 감소한 반면에 3다마 지구 등 교외의 인구는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도 최근에는 둔화되고 있으나, 다마 뉴타운이 건설된 다마 시 및 하치오지 시[八王子市], 그리고 하무라[羽村]·히노데[日の出] 정의 연변부만은 여전히 높은 증가율을 보인다.

한편 산촌지역인 오쿠타마 정[奧多摩町]과 히노하라 촌[檜原村], 그리고 도서지역은 인구 감소가 계속되어 인구 과소지역이 되었다. 도쿄의 도시화 과정은 이같은 역사적 변천을 거쳐 이루어졌고, 도쿄 도내의 각 지역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었다.

도시화 과정

일본 정치·경제의 중추부

황궁(皇宮) 가까이 있는 지요다 구의 가스미가세키[霞が關]와 나가타 정[永田町], 하야부사 정[隼町]) 일대는 관청가(官廳街)이다.

1952년'중앙관아지구 정비에 관한 계획'에 의해 오테 정[大手町] 지구에서 각 중앙 행정부서를 옮겨와 관청가가 된 가스미가세키에는 행정 각성과 최고 검찰청, 경시청 등이 있으며, 나가타 정에는 국회의사당 및 의원회관, 총리부,총리관저,자민당(自民黨) 본부, 지방자치 단체의 도쿄 사무소 등이 집중되어 있다. 또 하야부사 정에 최고 재판소 등이 있어 이 3지구가 일본 입법·행정·사법의 각 기관이 집중된 정치적 관리기능의 집결점이다.

반면 도쿄 역 주변의 마루노우치(丸の內)와 오테 정은 일본 경제·산업의 중추를 이루는 업무 지구로 일본을 대표하는 은행·대기업의 본사가 모여 있다. 그밖에도 마루노우치에는 도쿄 도청과 중앙우체국, 오테 정에는 문화적 중추 관리기능인 도쿄 중앙 전보국과 국제전신전화국 및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사·산교게이자이[産業經濟]신문사 등이 있다.

시타마치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구

시타마치의 범위는 엄밀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택지인 야마노테와 대비할 경우, 에도 시대 이후 전통적인 상업지구인 주오·다이토[台東] 2개 구와 지요다 구의 간다[神田] 지역, 그리고 미나토 구의 일부가 포함된다.

상업 지구는 도매 지구와 소매 지구로 구분되는데, 대표적인 도매 지구는 주오 구의 니혼바시[日本橋], 지요다 구의 간다, 다이토 구 등이다. 이 도매 지구는 업종별로 구분되어 집단적으로 동업자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소매업은 음식점 및 각종 서비스업 등과 결합하여 쇼핑가를 형성하는데 긴자[銀座]가 대표적이다.

긴자는 도쿄 도뿐만 아니라 주변 현(縣)까지 서비스권으로 하여 고급 전문점·백화점·유행품점이 집중되었으며 유행의 첨단을 주도하고 광고와 새로운 정보교환 장소가 되었다. 이외에 아사쿠사[淺草]·우에노[上野] 등도 유서깊은 상업중심지로서 시타마치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긴자를 중심으로 한 번화가의 뒷거리에는 음식점·다방·바 등이 즐비하여 환락가를 이루고 있다.

긴자 서쪽에 인접한 지요다 구의 유라쿠 정[有樂町]도 도쿄의 이름난 환락가로 많은 일류극장이 모여 있으며, 백화점과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도 그곳에 있다.

야마노테 및 부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진전

도쿄의 주택지 발전은 몇 단계의 시대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도쿄 중심지에 가까운 야마노테 대지의 동단 부근으로 에도 시대에 무사들의 거주지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주택지화가 추진된 지역이다. 제2단계는 관동대지진 이후 철도 야마노테 선(線) 바깥으로의 주택지 확장이다. 2단계 주택지 확장에는 교통의 발달이 주요역할을 했다. 즉 도시 근교에 건설된 철도를 따라 주택지가 확대되었다. 현재의 시부야[澁谷]·메구로[目黑]·나카노[中野]·도시마[豊島]·스기나미[杉並]·세타가야[世田谷]·시나가와[品川]·오타[大田] 등 도심의 서부 여러 구의 주택지가 이때 형성되었고, 약간 뒤에 이타바시[板橋]·네리마[練馬] 등 북서부 지구도 주택지화되었다.

근년에는 야마노테의 구주택지로 도심업무 지구가 확대되어 업무용 건물과 호텔, 각종 단체의 회관이 급속하게 들어서고 있다.

또 재개발사업으로 고급주택과 상업시설이 혼재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신주택지와 구주택지 사이에 부도심(副都心)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도심은 근교 전철·JR·지하철과의 결절점에 발달했는데 신주쿠[新宿]·이케부쿠로[池袋]·시부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부도심은 주택지와 도심과의 중간에 자리하는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여 도심 상점가와 주변 상점가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고 대번화가로 번창하고 있다.

특히 신주쿠 지역은 도심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는 비즈니스 센터로서 고층 빌딩가를 이루고 있다.

고토 지구를 중심으로 한 공업지역

스미다 강[隅田川] 동쪽의 고토[江東] 지구는 일찍부터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스미다·나카가와·아라카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나기[小名木]·다테카와[堅川] 강 등의 많은 운하가 발달했으며, 이러한 수로가 도쿄 만(灣)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내륙수로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수로를 이용한 원료와 석탄 수송이 용이한 입지조건으로 공업지역이 발달했다. 고토 지구 서부에서는 중소 규모의 도시형 공업과 하청공업이 발달했으며 동일 업종이 특정 지구에 모여 있는데 특히 완구·피혁·메리야스 등이 이런 경향이 많다.

반면에 이 지구 동부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공장이 많았으나 근년에는 교통혼잡과 공해, 지반 침하 때문에 도쿄 만 연안의 임해 지역과 교외로 많이 이전했다. 이전한 공장 터를 이용하여 일본 주택공단과 도쿄 도에서는 공공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새로운 공업 지구는 도쿄 만을 매립한 임해 지역과 도쿄 도 외곽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또 에도가와·가쓰시카·아다치 구 등 도의 동부지역 각구는 과거 논농사 중심의 전원지대였으나 시가지 팽창으로 주택과 공장이 많이 생겨났다.

근교 주택지구의 중심지인 다마 지구

23특별구부를 제외한 도쿄의 육지부는 기타[北]·미나미[南]·니시[西] 다마[多摩] 지구이다.

지형적으로는 기타 다마는 대체로 무사시노 대지와 일치하며, 미나미 다마는 다마 구릉과 하치오지 분지, 니시 다마는 간토 산지와 그 산록에 해당한다. 그중에서 기타·미나미 다마지역에서는 도시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1971년까지 전지역에 시제(市制)를 실시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구부를 넘어서 기타 다마, 즉 무사시노 지역으로 주택지 확장이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무사시노, 미타카[三鷹], 고가네이[小金井], 고쿠 분지[國分寺], 구니다치[國立], 고다이라[小平] 등의 많은 근교도시가 생겼다.

또 미나미 다마 지구도 1960년부터 주택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다마 시에는 인구 38만 규모의 다마 신도시지역이 건설되었다. 이 지역이 대표적인 도쿄의 서부 근교지역이다.

1950년대 후반 이후 이 지역에는 단독주택뿐만 아니라 공영·민영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또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는 대규모 공장과 대학·연구소·병원 등 도시시설이 세워지면서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원의 정취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유명한 사적지와 명승지가 많아 도쿄 도민의 휴양지로서 중요하다.

그리고 옛날부터 숙박 및 시장촌으로 번성했던 하치오지 시에서는 전통적으로 섬유공업이 발달했는데 최근에는 기계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관광휴양지 다마 산지와 도서지구

간토 산지의 일부인 다마 산지는 다마 강과 그 지류인 아키가와 강의 침식에 의해 깊은 계곡이 형성되었고 거기에 오우메시[靑梅市]와 같은 곡구(谷口) 취락이 발달했다.

다마 산지에는 삼나무·소나무 등의 삼림이 울창하여 옛날부터 '오우메 임업'으로 유명하고 다마 강은 도쿄의 상수도원으로 중요하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지치부-다마[秩父多摩] 국립공원과 그외 도립공원 구역에 포함되며, 도쿄 도민의 휴양지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한편 도서지역인 이즈·오가사와라 제도는 남국 정취가 물씬 풍기는 국립공원지역으로 최근 관광지로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즈 제도는 후지-하코네-이즈[富士箱根伊豆] 국립공원에 속하며 항공로의 개설로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중의 격전지로 유명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의 점령하에 있었으나 1965년에 일본으로 귀속됨과 동시에 도쿄 도에 편입되었다. 아열대기후로 대부분 섬들의 자연이 잘 보존되어 1972년 오가사와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업

도쿄
도쿄
개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까지 일본 경제의 중심지는 오사카였으나 그후 도쿄에 관영 시설을 중심으로 한 산업이 번성하면서 오사카와 상권이 양분되었고 현재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경제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수도 도쿄에는 국가 중추 관리 기구와 함께 전국의 경제를 지배하는 대기업과 금융의 중추 관리 기능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와 경제계와의 결합이 한층 강화된 일면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가 지역적으로도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점이 일본의 특색 중 하나이다. 여기에 상업면에서도 전국적인 도매업, 국제적인 무역업 등 대규모 상사 활동이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 인구 집중은 방대한 소비 물자의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소매업에서도 전국 최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987년도의 도쿄 도 총생산은 63조 3,162억 엔으로 2위인 오사카의 2배 이상이다.

도민 1인당 소득은 344만 1,000엔으로 오사카보다 29%가 높다. 총생산의 경제 활동별 구성을 전국 평균치와 비교해 보면 상업·금융·보험업, 운수·통신업, 서비스업은 현저하게 높으며, 농림·수산업은 주택지, 공장부지로의 전환과 해양오염 등 도시과밀화의 영향으로 지위가 저하되어 오사카 부와 함께 산업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을 정도이다.

1985년도 산업별 취업인구구성은 2차산업 29.7%, 3차산업 69.7%이며, 1차산업 인구는 약 0.6%에 불과하다.

그리고 총생산액의 비율은 1차산업 0.1%, 2차산업 29.6%, 3차산업 76.5%이다. 3차산업 중에서도 도소매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 18.9%와 19.6%를 차지한다. 1960년대까지는 제조업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점차 공장분산 등의 영향으로 그 비율이 낮아지고 대신 상업·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아져 산업구조의 변화가 뚜렷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산업구조의 변화가 서비스화·정보화·국제화라는 경제·사회적 조건의 변화로, 도쿄 일극집중(一極集中)이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거대기업의 본사 집중

1979년, 도쿄에는 자본금 100억 엔 이상의 거대기업의 본사가 170여 개 있어 전국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10억 엔 이상 50억 엔 미만이 전국의 50%, 10억 엔 이하는 30% 이하로 대기업 본사의 도쿄 집중률이 높다. 기업들의 본사가 도쿄에 집중하는 현상이 1980년대에 더욱 심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방과 도쿄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이 증가했고 나아가서 이른바 '2본사 기업'에서는 도쿄 본사의 기능이 확충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도쿄에서의 본사기능 집중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법률상의 본사 소재지가 지방인 회사도 도쿄 지사나 지점이 사실상 본사에 가까운 기능을 갖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본사는 관청 지구에 가까운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집중되어 있다. 또 이 지역에는 상공 회의소, 경제계를 대표하는 각종 경제단체, 일본은행, 대장성(大藏省)·통상성(通商省)·농림성(農林省)이 모여들고 있다. 민간 대기업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영향권을 가진 공단(公團)과 대기업 이외의 회사도 본부를 도쿄에 두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는 중앙 관청과의 긴밀한 관계 강화라는 필연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쿄가 각종 정보와 지식의 집결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금융, 거래 기회, 통신의 편리함 등은 이러한 경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과 외국 자본계 기업

일본 대기업의 중추부는 국가의 금융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80년 현재 도쿄에는 1,217개의 은행 점포(전국의 14%)와 1,310개의 신용금고, 신용조합 점포가 있다. 그러나 금융량에서는 은행이 압도적으로 많아 대출 잔고가 80.6%(1989)에 달하고 있다. 은행 중에서도 전국적인 도시 은행의 수가 많아 전국의 33%인 893개이다(1980). 정보와 직접 관련을 가지는 금융 기관인 일본은행·일본흥업은행·일본장기신용은행·일본개발은행이 있으며 그외에 국민금융금고·중소기업신용금고 등 본점도 있다. 지방 은행도 대부분 도쿄에 지점을 가지고 있다.

도쿄의 은행 대출과 예금 잔고는 1989년에 각각 전국의 45%와 34.7%였는데, 예금 잔고보다 대출이 많은 것은 도쿄가 경제활동의 중심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밖에 증권거래에 있어서 주식과 국공 사채의 취급액, 수표교환액도 전국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1987년 도쿄에 있는 외국 자본계 기업은 1,264업체로 전국의 86.6%였다. 그중 구부(區部)에 입지하는 비율이 79%에 달하며 업종별로는 은행과 증권회사 등 금융업이 중심을 이룬다. 이들 기업이 도쿄에 진출하게 된 배경은 일본 금융시장의 거대화이며 특히 증권회사는 도쿄 증권거래소가 외국 증권회사를 회원으로 한 1985년 이후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지요다 구에 70% 정도 분포하는데, 교통 편리, 타금융업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상업과 무역

도쿄 상업의 중심은 도매업이다.

1988년 현재 도매업의 점포수는 6만 9,154개로, 90만 6,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도쿄 도매업의 판매액은 도쿄 도매업의 전체 상업의 90%에 가깝고, 전국 대비로는 34.0%로, 도쿄의 소매업과 음식점의 전국 대비가 각각 13.2%와 21.9%인데 비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또 업종별로 보면 기계 기구, 광물 금속 재료, 농산물·축산물·수산물, 음료·식료 순이다.

도매업 점포는 23개 구부내에 전체의 90% 이상이 들어섰으며 특히 에도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도매상이 집중했던 주오 구[中央區], 다이토 구[台東區], 그후 비즈니스가로 발전한 지요다 구[干代田區]와 분쿄 구[文京區]의 4개구에 집중해 전체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도매상들은 업종별로 지역 분화를 보이고 있다. 즉 주오 구 니혼바시[日本橋] 지구의 호리도메[堀留]·오덴마[大傳馬] 정의 섬유류, 요코야마[橫山]·바쿠로[馬喰] 정과 히가시 니혼바시[東日本橋]의 양품·잡화, 다이토 구 구라마에[蔵前]의 완구·인형, 아사쿠사[淺草]의 신발류·가구, 센조쿠[千束]의 주방용구 등이 그것이며, 지요다 구와 아키하바라[秋葉原]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전기기구 도매상가가 형성되었다. 지요다 구와 주오 구에는 대규모 상가가 집중해 있는 동시에 사무관리 기능도 강하다.

과거 도매상가에는 한 건물안에 점포·사무실·창고·주택의 기능이 일반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최근에는 주택과 창고가 분리되어 교외로 이전하는 경향이 많다. 소매업은 14만 6,995개 점포에 71만 2,000여 명이 종사하고 총판매액은 15조 1,518억 엔이다. 소매상가는 각처에 분포하나, 도심부의 긴자[銀座], 유라쿠 정[有樂町], 니혼바시 부근에는 고급품점·유행품점들이 집중되었고, 특히 신주쿠[新宿]·시부야[澁谷]·이케부쿠로 등지에는 부도심 상가가 형성되어 교외 지역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업

도쿄는 가와사키[川崎]·요코하마를 포함하는 게이힌[京浜] 공업지대의 중심지로 1950년경부터 공업이 급속히 발전, 전국 대비로 볼 때 1959년에 최고에 달했다.

그후 게이힌 공업지대가 외연적으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그 중심지역이 동공화되는 이른바 도너츠화 현상이 생겨, 도쿄의 상대적 지위가 점점 낮아져 1963년 이후는 종업원수가 크게 감소했다. 1978년경부터 '공업제한법'의 규정에 의해 게이힌 공업지대 안에 작업장이 500㎡ 이상인 공장을 신·증설할 수 없게 되어 대규모 공장은 가와사키·요코하마 등 임해지구와 주변 내륙지역으로 이전했으며 도쿄의 지역 경제는 탈공업화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1979년 공장수·종업원수에서 제1위를 차지했으며, 제품 출하액은 4위였다. 특히 부가가치 생산액은 56조 엔으로 수위를 차지하여 가공도가 높은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1988년에는 공장수 8만 4,925개소, 종업원수 88만 8,000명, 제조업 출하액 20조 2,126억 엔, 부가가치 8조 5,579억 엔으로 1970년대와는 달리 공장수에서만 전국 수위를 차지하고 그외에는 모두 제4위로 떨어졌다. 즉 공장수는 점차 증가되어 영세화의 경향을 나타내는데, 9인 이하 업체수가 전체의 82.1%, 특히 3인 이하 업체가 전체의 46.9%이다.

부가가치면에서 경공업과 중공업의 비율은 비슷하지만, 전국적으로 중공업의 비율이 높은 것과 비교하면 도쿄는 경공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업의 종류는 출판·인쇄업이 공장수·종업원수·제품출하액 등 3지표에서 1위이다. 특히 제품출하액은 24.0%를 차지해 2위의 전기기계(21.1%), 3위의 수송용기계(7.9%)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도쿄의 공업이 문화·정보 기능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외 경공업도 소비재 생산이 중심이다. 따라서 도쿄의 공업은 다종·소단위·고급품으로 패션적인 요소를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제품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또 공업을 기능분담 측면에서 보면 기획·설계 등 연구·개발 기능을 중심으로 전국적·국제적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도쿄 공업의 배치는 크게 오타[大田] 구, 시나가와[品川] 구, 미나토 구를 중심으로 한 조난[城南] 지역과 지요다 구, 다이토 구를 중심으로 한 조토[城東] 지역으로 구분된다. 조난의 조립기계 공업 지역에는 중심에 단순부품 공장, 그 주변에 완성부품 공장이 있고, 그 바깥쪽에는 대기업의 조립 공장이 있다.

즉 1, 2, 3차의 하청업체 집단이 동심원상에 배열되어 있다. 완성부품 및 조립 공장은 도내의 시·정·촌 지역과 인접현에 모이는 경우가 많다.

그외 식료품과 주문 생산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공업은 조토[城東]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인쇄·출판은 간다와 분쿄 구, 기성복은 분쿄 구와 도시마 구, 핸드백은 스미다 구[墨田區], 메리야스는 고토 구 등 제품별로 독특한 생산체제를 가진 집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서부 3다마 지구는 하치오지·오우메시의 재래식 섬유공업 외에 조후[調布]·미타카[三鷹]·후추[府中]·히노[日野]·하치오지·다치카와[立川] 등지에 기계제조를 주로 한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농업·임업·수산업

도쿄 1차 산업의 경제적 지위는 상공업에 비해 매우 낮아 1988년 농업 생산액은 약 399억 엔으로 공업 출하액의 0.2%를 차지하고 있다.

농가수·농업인구·경지면적 모두 전국의 1%에 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지면적은 1만 1,800㏊(경지율 5.4%)이며 논이 차지하는 비율은 5.7%에 지나지 않아 밭농사 중심이다. 농업 생산액은 채소와 화훼가 69.8%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축산(18.3%)이며 쌀농사는 1.2%에 지나지 않는다. 농가수는 약 2만 5,000호이나 전업 농가는 전체의 6.5%인 1,600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업 농가는 화훼·정원수·채소 등 전문 기업적 경영을 하고 있다.

겸업 농가도 1종 겸업은 전체의 9.4%인 2,400호인 반면, 2종 겸업은 전체 농가호수의 84.1%를 차지하여 농업에 대한 의존율이 낮다. 경지 규모에서는 0.5㏊ 이하가 65.1%를 차지하고 2㏊ 이상은 0.4%이다. 1989년 현재 농업 취업인구(16세 이상)는 4만 2,000명으로 1970년에 비하여 27.6%가 감소되었다.

임업은 과거 오쿠타마[奧多摩] 산지의 오우메를 중심으로 과거에는 유명했으나, 현재 이 지역은 목재 공급 외에 상수도원·환경보전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산업은 도서부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과거 김과 활어(活魚)의 주요한 어장이었던 도쿄 만은 매립과 해양오염으로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겨울 낚시 등 레저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임업과 수산업은 산업으로서보다는 환경보전 및 레저 활동의 기능이 강하다고 하겠다.

교통

도쿄는 에도 시대에 이미 니혼바시[日本橋]를 기점으로 하는 가도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수상 교통도 전국에 연결되었다.

일본 전국의 교통 체계는 도쿄를 중심으로 하여 방사선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현재 도쿄에는 항공로·철도·도로가 집중되어 있다.

도로는 구하곡 및 대지상을 잇는 방사상 도로망과 이를 환상(環狀)으로 연결하는 환상 도로망으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도로망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에도 시대의 교통 중심지였던 스미다 강 하계(河系) 지역은 관동대지진 후의 사설철도(私設鐵道),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도로의 발달이 모두 서부의 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통 시설의 정비가 침체되었다.

지하철은 1927년 처음 개통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면 전차의 폐쇄와 함께 건설이 크게 진척되어 현재 10개 노선으로 그 연장은 뉴욕·런던·파리에 이어 제4위를 차지한다. 또한 이러한 지하철이 교외 전철 및 고속 철도와 접속됨으로써 교외 위성도시는 도심과 더욱 원활하게 연결되었다. 그결과 도심을 중심으로 한 방사선상의 고속 교통 체계가 철도·고속도로 모두 점차 정비되고 있으나 수도권 혹은 도내 각 지역간의 횡적 연결은 나쁘며 도로도 혼잡하다.

도쿄 도의 자동차 1대당, 또 인구 1,000명당 도로연장률은 각각 5.73㎞, 1.88㎞로 전국 최하이며, 시가지의 도로면적률도 매우 낮아 자동차 급증으로 과밀·혼잡에 시달리고 있다.

1931년에 건설된 하네다[羽田] 공항은 1952년 국제공항이 되었다. 그러나 항공화물 및 여객의 증가로 1978년 나리타[成田] 국제공항이 새로 건설됨에 따라 하네다 공항은 주로 국내선에만 이용되고 있으며 국내 여행객 증가로 확장 계획을 하고 있다.

철도교통에서 도카이도[東海道]는 제2 신칸센[新幹線]의 필요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이며, 도로 교통은 일반 국도 이외에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으나 교통 수요의 증가가 도로 건설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그 해결은 매우 곤란한 상태이다. 도쿄 항은 원래 스미다 강의 하항을 이용해왔으나 1941년 외국 무역항이 되었으며 도쿄 항을 통한 화물의 80% 정도를 국내 화물이 차지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교통로를 계속적 확장·개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 포화상태는 극심하며 특히 도심을 중심으로 한 통근·통학시의 교통량 격증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문화와 교육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도쿄는 일본 문화·교육의 중심지이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정보 산업의 집중이다. 1986년 현재 정보 서비스업은 4,700업체에 16만 9,933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전국 대비로는 각각 30.7%, 48.9%이다.

과거 10년간 업체수 1.5배, 종사자수 3배, 매상고 5배로 증가했다. 정보 서비스업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부문은 전체의 18.3%인 862업체(그중에서 267개 업체는 정보기기 판매도 겸함)에 지나지 않으나 매상고는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업무 내용별로 보면, 업체수에 있어서 시스템 개발이 67.2%로 가장 많고 다음이 데이터 입력과 시스템 관리 순이다. 지역별로는 전체의 44.9%가 도심 3구에, 신주쿠·시부야·도시마 등 부도심 3구에 32.7%를 차지하여 도심과 부도심의 집중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출판·인쇄 및 그 관련 산업은 출하액에서 전국의 44.2%가 도쿄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국 신문발행부수의 13.1%를 차지한다(1989).

문화·교육의 집중 정도는 대학수·대학생수·대학교원수에서 알 수 있다. 도쿄 도내의 대학수는 1990년 현재 전국의 20.7%(105개교)를 차지하며, 그 가운데 사립 대학은 27.8%에 달한다. 대학생수는 60만 3,841명으로 전국의 28.3%이고 또 대학교원 외에 각 문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도 전국에서 월등히 높다.

공공 도서관수는 250여 개이며 박물관·미술관·극장·음악관·문화회관 등이 수도에 걸맞게 갖추어져 있으며 도쿄예술대학이 있는 우에노[上野] 지역과 도심부가 예술의 중심지이다.

특히 간다[神田] 지역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등 여러 대학과 출판사가 모인 문화의 거리이다. 스포츠 시설로는 국립경기장, 고마자와[駒澤] 올림픽 공원, 요요기[代代木] 경기장 등이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이 각각 7개와 8개 있으며 신문사·통신사도 밀집하여 도쿄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중매체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시설들은 황궁[皇宮], 메이지 신궁, 조조 사[增上寺], 아사쿠사 관음[淺草觀音], 신주쿠교엔[新宿御苑], 고라쿠엔[後樂園], 리쿠기엔[六義園] 등 역사적인 건조물·정원과 더불어 국내외의 주요한 관광 대상이 되고 있다.

자연공원으로는 산악미가 뛰어난 지치부-다마[秩父多摩] 국립공원과, 후지-하코네-이즈[富士箱根伊豆], 오가사와라[小笠原] 국립공원이 있다. 그밖에 사야마 호[狹山湖], 다마 호[多摩湖], 오쿠타마 호[奧多摩湖], 미타케 산[御岳山], 다카오 산[高尾山] 등의 휴양지가 있는데, 특히 오가사와라는 도쿄 도의 육지부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개발되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아열대기후의 특성이 강하여 남국의 정취가 풍긴다. 도서부 중에서도 오시마 섬[大島], 하치조 섬[八丈島] 등지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항공로·정기항로가 열려 있다.

생활

도쿄는 국제무역항인 요코하마[橫浜]·고베[神戶]와 함께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문호 역할을 하며, 생활양식과 의식이 가장 현대적이고 개방적이다. 그러나 1940년경까지만 해도 토착인구가 많고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향토색 짙은 대도시로 시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축제와 그외 연중행사가 각지에서 흥겹게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의 토착적인 요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변하여 대부분의 축제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다른 지역 출신이 훨씬 많아짐에 따라 전국의 다양한 향토색이 뒤섞여, 시내 중심가에서 간사이 지방[關西地方]과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사투리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연령별로는 20~30대, 더욱이 고학력층이 중심이며, 외국과의 교류가 한층 빈번해짐에 따라 도쿄 문화는 퍽 다양해지고 있다. 긴자[銀座], 아카사카[赤坂], 롯폰기[六本木]를 중심으로 한 번화가는 국적불명의 도시를 방불케 하고 있다.

오늘날 도쿄는 '편리'는 하나 '안전'·'쾌적'과 같은 환경조건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환경조건의 악화는 공해병의 발생건수와 공해에 대한 진정건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공해병 인정 환자는 1979년말에 2만 명을 넘어섰고, 1989년 대기오염·소음·진동 등 공해에 대한 진정건수는 7,965건으로 1960년대보다 4배 정도 늘어났다. 그 가운데에서 소음에 대한 진정이 전체의 51.3%를 차지하고 그 다음이 악취·대기오염의 순이다. 교통사고는 1980년대 일시 감소했으나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1989년에는 5만 4,428건으로 1980년에 비해 69.7% 늘어났다. 사망자수도 6만 4,451명으로 1980년에 비해 65.7% 증가되었다.

최근 수도권 내의 일반 봉급생활자가 단독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전체적인 주택사정이 매우 좋지 못하다. 세대당 건평은 60.3㎡로 전국 최하위이며 주택 소유세대율도 41.4%로 과반수 이상이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또 통근거리 1시간 이상인 세대비율이 21.5%(1988)이며 수도권 내 주변의 새로운 주택단지로부터 도심까지 약 2시간 걸린다.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간편함을 지향하는 의식구조, 정보전달 매체의 급증, 산업폐기물의 증대로 인한 쓰레기 증가 및 처리문제는 도쿄에서도 심각한 도시문제의 하나이다.

이외에도 용수·전력 등 자원확보문제, 범죄·이혼·실업 등 사회적 병리현상 때문에 도쿄 도 전 세대의 약 40%가 주거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문화·오락·레저 기능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의 근로자는 직업 때문에 할 수 없이 도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도권 정비계획과 과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가지의 약 반 정도가 파괴되고 인구도 격감했던 도쿄에서는 전쟁 직후부터 과대화를 방지하기 위한 시책이 강구되었다.

그러나 인구·산업의 도쿄 집중은 계속되어 1955년에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최고 인구를 웃돌았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1958년 제1차 수도권 계획을 수립하여, 도쿄 대도시 지역의 골격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대런던 계획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도심에서 100㎞권내의 기존 시가지, 근교 지대 및 주변 지역으로 구분하고, 각 지역에 바람직한 기능과 그를 위한 시책을 마련했다.

즉 기존 시가지에 산업 및 인구 집중을 억제하고, 그 주변에 그린벨트를 설정하여 그린벨트의 바깥쪽에 단지형태로 공업을 유치해 인구를 흡수할 것을 목적으로 시가지 개발구역이 설정되었다. 또 1959년에는 도쿄 구부, 무사시노 시, 마다 시 등의 기존 시가지에 있는 공장 등을 제한할 목적으로 '공장입지 3법'도 실시되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60년의 신주쿠[新宿] 부도심 계획, 1964년의 하치오지·히노 지구의 시가지 개발 등 수도권 기본 계획을 거쳐 1965년 수도권 정비법이 개정되고, 이에 기초하여 1968년에는 제2차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는 도심에서 50㎞권내의 기존 시가지에 인접하는 지역을 새로운 '근접 정비 지대'로 설정하여 녹지를 포함한 계획적인 시가지 건설을 목적으로 한 점에 특색이 있다.

이때부터 도쿄 구부에서는 야간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한편, 주거지가 확대되어 도심의 인구 공동화 현상이 생기고 통근 문제가 심각해졌다. 수도권 특히 도쿄의 과대화를 방지하기 위한 수도권 정비계획은 1990년에 제4차 기본 계획까지 실시되었으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많이 안고 있다.

문제점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① 토지문제, ② 용수·전력 등의 자원 확보 및 교통난, 쓰레기 처리, 생활 환경의 악화 등 사회적 공동소비의 질적·양적인 부족 문제, ③ 도심·시타마치의 활성화와 주변부의 자립성 강화 등 지역별 문제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파급 효과가 큰 것은 토지문제이다. 1980년 이전부터도 도쿄의 땅값은 상대적·절대적으로 높았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도쿄 재집중의 영향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땅값 상승 요인으로는 정보화·국제화·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무실 수요의 급증으로 도심 상업 지역에 대한 토지수요증대와 투기적 토지거래에 의한 '가수요' 증가를 들 수 있다. 그 결과 주택가격도 급격히 상승하였다. 공공 주택 공급 부족에 의한 근로자들의 주택 구입난이 심화되어 주택지는 주변 현(縣)으로 확대되었고, 이 지역에서 도심까지의 통근 거리는 약 2시간이나 걸린다. 땅값 상승은 그외에도 공공시설 정비와 도로·철도건설의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으며, 도시 공동체의 붕괴와, 토지를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간의 사회적 불공평감을 확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