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폴리스 전투

니코폴리스 전투

다른 표기 언어 Battle of Nicopolis

요약 투르크가 유럽 십자군과 싸워 이긴 전투(1396. 9. 25).

발칸 반도와 유럽 중부에 대한 투르크의 세력 팽창을 막으려는 강력한 국제적인 노력을 종결시켰다(→ 오스만 제국).

술탄 바예지드 1세(1389~1402 재위)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자(1395), 비잔틴 황제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구스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 왕들에게 구원을 호소했다.

헝가리의 왕 지기스문트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에 호응하자, 1396년 7월 프랑스·부르고뉴·잉글랜드·독일·네덜란드에서 온 기사들이 부다에서 지기스문트와 합류하여 먼저 발칸 반도에서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그다음 아나톨리아와 시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다.

십자군은 8월에 투르크의 영토에 진입하여 비딘과 라호바의 수비대를 격파한 후, 도나우 강가에 있는 투르크 본거지인 니코폴리스를 포위했으나 니코폴리스는 식량과 장비가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으며 방비도 잘되어 있었다. 십자군이 니코폴리스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바예지드가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진군해 와 몇 마일 떨어진 언덕에 진을 쳤다.

지기스문트는 그의 동맹자들에게 수비진영을 유지하도록 요청했으나, 기사들은 그 언덕을 공격해서 투르크 기병대와 보병의 최전선을 흐트러뜨렸다. 그러나 바예지드는 세르비아 군대에 의해 증강된 또다른 기병분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맞았고, 십자군은 너무 지쳐 잘 싸우지 못했다. 처음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던 지기스문트가 그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휘하에 있던 블라키아와 트란실바니아 부대는 탈영하고 헝가리 부대로는 역부족이었다. 투르크는 십자군을 대부분 학살하고, 남은 세력마저도 도나우 강 쪽으로 내몰았다. 지기스문트를 비롯하여 십자군 중 소수는 탈출했으나 생존자들은 대부분 바예지드에게 잡혀서 처형되었다.

니코폴리스 승리로 투르크는 장차 그들에 대항할 유럽 연합의 형성을 막았다. 그들은 여전히 콘스탄티노플에 대해 압력을 가했고, 발칸 반도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했으며, 중부 유럽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