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슬

뉴캐슬

다른 표기 언어 Thomas Pelham-Holles, 1st Duke of Newcastle(-under-Ly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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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93. 7. 21
사망 1768. 11. 7, 영국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총리(1754~56, 1757~62 재임).
Duke of Newcastle-upon-Tyne, Marquess of Clare, Earl of Clare, Viscount Haughton, Baron Pelham of Laughton, Baron Pelham of Stanmer라고도 함. 본명은 Thomas Pelham.

정부관직임명권을 관리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711년부터 펠럼 홀리스라는 이름을 썼고 1712년에 아버지에게서 로턴의 펠럼 남작위를 물려받았다. 1714년 성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12개 주(州)에 땅이 있었고 임대수입만 해도 연간 거의 4만 파운드나 되어 잉글랜드에서 가장 부유한 휘그당 지주에 속했다. 조지 1세(1714~27 재위)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왔고 그 공으로 1715년 뉴캐슬어폰타인 공작이 되었다.

1724년 총리 로버트 월폴이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했고 3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동생 헨리 펠럼이 1743년에 총리가 되자 더 큰 세력을 얻었다. 1754년 3월에 펠럼이 죽고 그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으나 7년전쟁(1756~63)이 일어난 지 처음 몇 달 동안 프랑스군에게 영국이 계속 패배하자 결국 1756년 10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나서 뉴캐슬언더라임 공작이 되었다.

8개월 뒤에 그는 이전에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윌리엄 피트(나중에 채텀 백작 1세)와의 불편한 제휴 상태에서 다시 총리가 되었고 피트는 국무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뉴캐슬은 각료들의 지지로 의회에서 다수파를 확보해 관료임명을 좌우했으며 피트는 7년전쟁을 지휘해 처음의 패배를 빛나는 승리로 바꿔놓았다. 1762년 5월에 젊은 조지 3세가 총애하던 뷰트 백작 3세 존 스튜어트에게 총리자리를 내주었다. 자식이 없었으므로 그가 죽은 다음 공작위는 조카인 헨리 핀스 클린턴에게 넘어갔다.

뉴캐슬은 하노버가(家)에 의해 영국 왕실이 계승되도록 힘썼고 휘그당 대의명분을 고집했으며 정치를 위한 정치에 몰두했다. 그당시 영국 정치에는 정당 조직이 거의 없었으므로 정부의 결속과 안정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적으로 선거를 관리하고 장관직 임명에 대한 의회 지지를 얻기 위해 관리임명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뉴캐슬은 직위·명예직·연금 등의 적절한 분배를 통해 하원에서 다수표를 확보하는 데 무한한 솜씨와 인내를 보여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이렇게 관직임명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랫동안 중단없이 공직에 있었기 때문에 풍부한 왕실 재정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서였다. 그는 당시 내각의 모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뉴캐슬에 대한 전기로는 레이 켈치의 〈뉴캐슬 Newcastle〉(1974)과 리드 브라우닝의 〈뉴캐슬 공작 The Duke of Newcastle〉(197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