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대북

다른 표기 언어 大北

요약 조선 중기 북인에서 나누어진 당파의 하나(→ 붕당정치).

선조 초기에 동서분당이 일어났고, 1591년(선조 24)에는 세자책립 문제로 해서 서인 정철이 정권에서 물러나고 동인이 집권하게 되면서 서인의 탄핵문제에 있어서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분립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집권하게 된 북인은 1599년 홍여순(洪汝諄)이 대사헌으로 천거되었을 때 정랑 남이공이 반대한 일을 계기로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분당했다.

즉 이산해(李山海)·홍여순이 영도하는 당을 대북이라 했는데, 여기에는 기자헌·이이첨(李爾瞻)·정인홍·허균(許筠)·한찬남·이명(李溟)·이성(李惺)·백대형·구의강·홍식(洪湜)·유몽인(柳夢寅) 등이 속했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에 영의정이 된 이산해와 병조판서 홍여순이 대립함으로써 이산해계는 육북, 홍여순계는 골북계로 나누어졌다. 이러한 대북당은 선조말 광해군을 세자로 옹립함으로써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던 소북당과 분쟁을 벌였다.

1608년 선조가 죽고 왕세자인 광해군이 즉위함으로써 대북은 정권을 잡게 되었다. 대북당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소북인을 몰아내라는 상소를 여러 번 올려 대북인을 계속 등용케 함으로써 삼사의 관원마저 대북당인이나 대북당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했다. 그리고 이어서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 이때 대북 중에서도 유몽인을 중심으로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폐위에 반대한 사람들은 중북으로 분파했다. 그리하여 광해군 즉위 10년 만에 서인은 물론이요 남인과 소북인마저도 야당으로 되었고 대북 중에서도 중북이 분파함으로써 대북집권의 정부는 고립되어갔다.

이에 1623년(광해군 15) 3월 서인이 대북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업고 반정을 일으킴으로써 대북은 제거당했다. 즉 대북파의 이이첨·정인홍·이위경 등을 비롯한 수십 명이 살해되었으며 200여 명이 유배당함으로써 대북의 집권기는 끝이 났다. 유몽인 등 중북은 폐모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인조반정 때 화를 면했으나 끝내는 죽음을 당했다.→ 북인, 붕당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