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르웨이

다른 표기 언어 Norway 동의어 노르게, Norge, Kongeriket Norge, 노르웨이 왕국, Kingdom of Norway
요약 테이블
위치 스칸디나비아반도 서부
인구 5,514,477명 (2024년 추계)
수도 오슬로
면적 385,186㎢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노르웨이 왕국 (Kingdom of Norway)
기후 해양성기후
민족 구성 켈트족, 게르만족
언어 노르웨이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단원제
종교 복음루터교(85%)
화폐 노르웨이 크로네 (NOK) 환율계산기
국화 전나무
대륙 유럽
국가번호 47
GDP USD 443,252,000,000
전압 220V / 50Hz
도메인 .no

요약 유럽의 국가. 국토 중앙과 남서부가 넓은 고원지대로 이루어진 산악지형이다. 국민 대다수는 노르웨이인이고,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이다. 국교는 복음주의 루터교이며, 화폐단위는 노르웨이크로네이다. 전통적인 어업 및 임업 국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광업과 제조업이 증가했다. 주로 서비스업·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업·경공업·중공업에 기반을 둔 경제가 발달했다. 포괄적인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토 회원국이다. 1994년 유럽 연합 가입을 거부했다. 면적 385,186㎢, 인구 5,514,477(2024 추계).

목차

접기
  1.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 교류·교민 현황
  2. 자연환경
  3. 국민
  4. 경제
  5. 정치와 사회
  6. 문화
  7. 역사
노르웨이 국기
노르웨이 국기

수도는 오슬로이다. 16만 개 이상의 호수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이 산악국가는 북위 58~72°(북북동에서 남남서로 약 1,753km)와 동경 4~32°(동남동에서 서북서로 약 430km 폭) 사이에 걸쳐 있다.

북쪽으로 바렌츠 해, 서쪽으로 노르웨이 해 및 북해, 남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연방 등과 접하고 있다.

지도
노르웨이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59년 노르웨이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72년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1980년 주한 공관을 개설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노르웨이 수출액은 4억 1,725만 달러, 수입액은 9억 7,252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철도용 및 궤도용 외의 차량과 부속품, 선박 및 수상 구조물, 화학공업 생산품 등이며 수입품목은 광물성 연료 및 석유, 연어, 천연진주 및 백금 등이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노르웨이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6,670명이며,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314명이다.

자연환경

영토의 반 이상이 해발 500m가 안되며, 단지 15%만이 해발 975m를 넘는다. 지질학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들(10억~20억 년)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다. 산계(山系)는 영국 제도를 형성하는 칼레도니아계의 연장으로, 최고봉인 갈트회피겐(2,470m)이 남쪽에 있다. 글로마 강(599km)이 가장 주요한 강이며 뫼사 호(368㎢)가 가장 큰 호수이다.

250만 년 전에 시작된 제4기에 여러 번 빙하로 뒤덮였고 지금도 약 1,700여 개의 빙하가 있으며, 북해안과 서해안은 협만들에 의해 만입되어 있다.

알래스카와 거의 같은 위도상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곳의 기후가 더 따뜻한 것은 멕시코 만류 덕분이며, 이 만류는 협만의 동결을 막아준다. 7월 평균기온은 남쪽의 17℃로부터 북쪽의 10℃까지 변화한다. 또한 1월평균기온은 남동 해안의 -2℃로부터 내륙 골짜기의 -10℃까지 기온차가 있다. 연평균강우량은 동쪽의 750㎜ 이하로부터 서쪽의 약 2,052㎜까지로 큰 차이가 있다. 빈번한 돌풍이 발생하며 날씨 변화가 심하다. 북부 노르웨이는 백야(白夜)의 지방으로 5월 중순부터 7월말까지 해가 지지 않고, 또 반대로 11월말부터 1월말까지는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색인:한밤의 태양).

고도가 낮은 지역에는 낙엽수림(너도밤나무·서양물푸레나무·느릅나무·단풍나무 등)이 있으며, 고도 850m까지는 침엽수림(가문비나무·소나무)이, 더 높은 곳에는 버드나무와 키 작은 관목들이 있다. 북극권 북쪽에는 소나무가 주로 내륙 골짜기에서 자란다. 이 나라 전역에서 순록을 비롯해 굴로·레밍·여우·담비·수달 등을 볼 수 있다.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들 가운데는 늑대와 북극 흰곰이 있다.

전통적으로 어업과 제재업에 종사해온 국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이후로 광업과 제조업 활동이 크게 증가했다. 철을 이용한 합금과 금속합금 부문에서 세계 최대 수출국에 속한다. 서유럽 최대의 근해 유전, 천연 가스 산지와 유럽 최대의 타이타늄 광석 매장지가 있으며, 수력발전과 마그네슘 금속 생산에 있어 세계 최대 생산국에 속한다.

트롤퉁가(Trolltunga), 오다(Odda)에 위치
트롤퉁가(Trolltunga), 오다(Odda)에 위치

국민

인구의 98%는 게르만계(북유럽인, 유럽중부인, 발트 해 연안인)이며 최대 소수민족은 약 0.6%를 차지하는 랩인이다. 인구의 약 90%가 루터 교회 신자이며 공식 언어는 노르웨이어이다. 인구밀도는 비교적 낮다. 15세 이하의 인구가 전체 15% 정도이며, 65세 이상 역시 16.6% 정도이다. 평균기대수명은 대단히 높아서 남자는 81.6세, 여자는 85세이다(202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률은 감소했다. 영아사망률과 결핵발병률을 낮추기 위해 보건관리를 개선한 결과 사망률 역시 낮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이주가 엄청나게 증가해, 인구의 4/5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출국이민과 입국이민의 수가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증가율은 1% 내외의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551만 명이다.

경제

대체로 서비스업, 경공업, 중공업, 석유, 천연 가스 생산업 등에 기반을 둔 혼합경제가 발달하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농업은 전체 GNP의 4%도 안되는 몫을 차지하는데, 노동력의 대략 7%가 이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전국토의 약 5%만을 경작할 수 있으며, 이 경작지는 골짜기·호수·협만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작물은 보리·감자·귀리·밀 등이며 주요가축으로는 양·소·돼지 등이 있다. 모피를 얻기 위해 푸른여우·은빛여우·밍크를 사육한다. 그리고 대부분 침엽수로 이루어진 삼림이 전국토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어, 임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노르웨이 선박들은 청어를 비롯해 푸른대구·별빙어·대서양대구·참새우·새우 등을 낚아올리며, 이 생선들을 냉동시키거나 통조림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1977년에 경제구역이 설정되어 근해 200해리까지의 어장을 보호하고 있는데, 이 경제구역에 대해 소련은 이의를 제기해왔다.

1975년 이후 노르웨이 소유의 북해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로 인해 주요 석유수출국이 되었다. 그러나 노르웨이 정부는 스타토일(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을 통해 석유탐사와 생산에 참여하고 균형된 경제발전을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근해 유전의 개발을 제한해왔다.

세계 주요 알루미늄 생산국 중의 하나이며, 구리도 널리 채광된다. 1973년에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노르웨이는 유럽 경제공동체가 설정한 할당량 때문에 철 생산량이 감소했다.

공업은 GNP의 약 1/6 정도를 차지하며 유사한 비율의 노동력이 이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철·목재·어류 등과 같은 국내 천연자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풍부한 수력발전이 알루미늄 생산의 증대를 도왔다.

컴퓨터 관련산업과 종이, 가구, 실리콘 합금, 전기, 기술제품제조 등이 주요산업이다. 전력은 대개 수력발전소에서 얻어진다.

노르웨이의 상선(商船)은 세계 최대이자 가장 현대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1975년 이후 해운업의 불황 때문에 외국 기업들에 선박들을 팔면서 조선업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19세기 후반부터 활성화되었다.

노동자와 경영인 사이의 의견조정으로 저소득 노동자에게 더 큰 폭의 임금상승을 허용함으로써 임금을 균일화해 나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세금은 매우 누진적이며 공공지출이 GNP의 약 1/4을 차지하는데, 사회보장을 위한 지출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영국·독일·스웨덴 등이다. 주요수입품은 기계류, 운송장비, 연료를 포함한 천연자원, 금속 등이며 수출품으로는 석유, 천연 가스, 알루미늄, 철, 강철 등이 있다.

정치와 사회

이 나라는 세습적 입헌군주국이다. 1814년에 채택된 노르웨이 헌법은 수정된 단원제 의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다. 4년 임기인 157명의 의원은 비례대표제에 의해 선출된다.

선거 후 의원의 1/4은 상원, 나머지는 하원을 구성하는데, 양원은 입법 쟁점에 따라 각각 또는 공동으로 열린다. 행정권은 명목상으로 왕에게 있으나 왕의 역할은 주로 의식적인 것이며, 총리가 이끄는 국가평의회가 실질적인 집행권한을 행사한다. 왕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수상·국가평의회를 형식상 선정한다. 주요정당으로는 노르웨이 노동당과 보수당이 있다. 사법부에는 법적 결정의 최종 판정자인 대법원을 비롯해 상소법원, 지방법원이 있다. 3만 7,000명의 무장 병력 중 반 정도가 육군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인 노르웨이는 침략을 받을 경우 나토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포괄적인 사회복지제도는 질병·출산 보조금을 포함해 가족수당·노령연금·지체부자유연금·실직연금(부양수단을 잃을 경우 개인의 근로생활 동안 얻어진 수준에 가까운 기본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연금) 등을 제공한다. 의무적인 국가보건관리제도가 되어 있어, 무료로 병원진료를 제공하고 의사들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광범위한 예방의학 프로그램과 함께 훌륭한 의료진을 갖춘 의료시설들 덕분에 가장 심각한 전염병들, 특히 결핵이 거의 근절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야기된 전국적 주택부족은 현재 거의 해결되었다.

정부의 주택지원책으로는 건축·주택개량을 위한 저리대출과 임대수당 등이 포함된다. 건축에 영향을 준 것들로는 가장자리에 벤 자국이 있는 통나무들을 수평으로 해서 지어진 집들과 함께 수직으로 선 통나무로 지은 중세의 널판지 교회들이 있다. 개인주택들은 지형에 맞게 거의 전부 목조로 지어진다.

과학 및 연구는 재원이 한정되어 있으나, 자연과학 분야에서 개인적인 노력들이 상당한 갈채를 받았다. 바이킹인 붉은 머리 에리크와 그의 아들 레이프 에릭손에서부터 오늘날의 프리드티오프 난센, 로알 아문센, 토르 헤이에르달 같은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노르웨이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들이다.

노르웨이의 문맹률이 사실상 0%라는 점은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잘 되어 있음을 나타내준다. 7~15세 사이의 교육은 의무적이며, 거의 모든 학령아동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일반 초등학교 교육 다음에는 전문화된 중등학교 교육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기술훈련이나 대학으로 가게 되는 일반 교과과정의 연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고등교육기관은 늘어나는 학생수를 수용하기 위해 크게 확대되었다.

언론은 수준이 높으며 편집자들의 독립성을 보편적으로 인정한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특정 정당과 제휴하고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은 국가가 독점한다. 교육과 정보 프로그램이 오락물보다 우선한다.

문화

바이킹 시대에 속하는 고고학적 발견, 북부 랩인의 문화, 진보된 디자인 학교 등의 자극으로 예술, 공예, 산업 디자인이 나란히 꽃피고 있다. 가구, 에나멜 그릇, 섬유, 식탁, 보석 디자인 등은 역사적·민족적·전위적 양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노르웨이어는 사용하는 인구수로 볼 때 세계적으로 작은 언어공동체이지만, 출판활동에 있어서는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발간되는 새로운 책들은 노르웨이어로 쓰여진 창작본들이다. 노르웨이 작가들은 문학적으로 중대한 기여를 했다. 가장 유명한 작가는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이다. 그밖에 국제적으로 뛰어난 작가들로는 비외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 크누트 함순, 시그리드 운드세트 등이 있다. 상설극장들이 여러 시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립이동극단인 리크스테아트레트가 있어 전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한다.

20세기의 노르웨이 화가들은 멕시코 화가들과 더불어 벽화 제작에 가장 뛰어나다. 벽화 이외에도 회화는 물론이고 여러 매체의 앙상블라지, 그림이 든 직조, 건축에서의 비구상예술 등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에드바르트 뭉크는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구스타프 비겔란의 작품들은 오슬로에 있는 비겔란 조각공원에 수집되어 있다.

시계 탑, 아케르 브뤼게(Aker Brygge)에 위치
시계 탑, 아케르 브뤼게(Aker Brygge)에 위치

역사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알려진 가장 초기의 것은 해안을 따라 발견되는 석기 도구들로 BC 7000~6000년의 것들이다. BC 3000~2500년 사이에 새로운 이주자들이 동부에 정착했다. 기원후 첫 4세기 동안 노르웨이인들은 로마에 정복당한 골족들과 접촉했다. 서구에서 로마 제국이 몰락하던 시기(400~600)에 노르웨이에서는 웅장한 무기와 금으로 만든 물건을 함께 매장한 족장들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800~1050년은 바이킹 시대로, 당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약탈원정을 떠났다. 노르웨이인의 후손이 그린란드에 정착했고, 빈랜드(뉴펀들랜드 해안) 원정에 나섰다.

900~1035년의 노르웨이 땅에는 여러 국가들이 형성되어, 각 국가는 일단의 무사들을 이끄는 족장이 지배했다. 1015~30년에 울라프 2세 하알손이 전체 노르웨이 최초의 왕이 되었다. 울라프는 잉글랜드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빠져 노르웨이로 돌아온 후 많은 노르웨이인들을 개종시켰다. 1130~1240년에는 노르웨이 왕위를 둘러싸고 여러 세력간에 내란이 벌어졌다. 내란 후기 동안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호콘 4세(1217~73)가 이 기간에 통치했다. 13세기 후반과 14세기 대부분을 통해 왕의 부와 권력은 증대했다.

1389년 포머른의 에리크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고 후에(1397)는 스웨덴과 덴마크의 왕이 되었다. 1442년 에리크 왕의 폐위 후 노르웨이는 어느 정도 독립을 유지하며 새로운 헌법을 갖기는 했으나, 스웨덴과 합병된 1814년까지 덴마크 왕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스웨덴 왕에 의한 지배는 190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해에 스웨덴의 오스카르 2세는 노르웨이 왕권을 양도했으며, 노르웨이인들은 투표로 공화국을 세우기보다는 독립된 군주국을 재수립하기로 결정했다. 그결과 덴마크의 카를 공이 호콘 7세로 선출되었다.

1905~14년 노르웨이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의료보험을 비롯해 1일 10시간 근무와 주당 48시간 근무 같은 많은 사회개혁을 법규화했고, 1913년에는 여성들에게까지 투표권을 확대했다. 이 나라 해운업이 제1차 세계대전의 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정책적으로는 전쟁 동안 중립을 지켰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유주의 진로를 추구했다. 1927년에 이르러 노르웨이의 실업률은 20%에 달했고, 대공황기에는 33%까지 증가했다. 이같은 경제적 불황 아래서도 양대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경제발전과 공업성장을 이루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중립을 선언했으나 1940년 독일군이 침공하여 노르웨이군을 패배시켰다. 노르웨이 왕과 정부는 영국으로 피신했으며, 독일의 점령은 대전의 종결 때까지 계속되었다. 1945~65년까지는 노르웨이 노동당이 거의 계속 집권했다. 1930년대에 시작된 많은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이 지금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1965년 우익 연합세력이 노동당 정부를 축출한 뒤 1971년까지 집권했다. 그후 노동당은 1981년까지 일시적으로 권력을 잡았으며, 그기간 중 얼마 동안 노르웨이 최초의 여수상인 그로 하를렘 브룬틀란이 노동당을 이끌었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당 행정부가 1981~86년 집권했지만, 1986년 브룬틀란이 이끄는 노동당이 다시 집권했다.

헤달 목조 교회 (Heddal stave church)
헤달 목조 교회 (Heddal stave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