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도

나한도

다른 표기 언어 羅漢圖

요약 나한을 그린 그림.

나한도(羅漢圖)
나한도(羅漢圖)

응진전(應眞殿:또는 羅漢殿)에 봉안된다. 나한은 산스크리트 'Arhan'을 음역한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부처의 덕 높은 제자를 뜻한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자',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치게 하는 자', 즉 성자(聖者)를 가리키는데, 응공(應供) 응진(應眞) 살적(殺賊) 불생 무생(無生) 무학 진인(眞人) 등으로 의역된다.

나한은 16나한·18나한·500나한이 있는데 16나한이 가장 널리 그려졌다.

우리나라에서 나한신앙이 크게 성행된 것은 고려시대로 1051(문종 5)~1284년(충렬왕 10) 사이에 국가적인 공식 나한재(羅漢齋)가 빈번히 열렸고, 보제사 금당이 나한을 주존으로 모시는 나한보전(羅漢寶殿)이었던 것을 통해서 나한도의 제작이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작품은 이상좌(李上佐)의 〈나한도〉 5점을 비롯해 대부분 조선시대 것들이며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10점뿐이다. 조선시대 나한도는 16나한이 대종을 이루며, 나한도의 배치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홀수번호의 나한을, 오른쪽에는 짝수번호의 나한을 배치한다.

각각의 나한을 1폭에 표현해 16폭이 되기도 하고, 1폭에 2~4명의 나한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나한들의 자세는 서 있는 상, 앉아 있는 상, 돌아앉은 상 등 일정치 않으며 표정과 지물(持物)들도 다양하다. 특히 얼굴 모습은 때때로 이국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탈속한 노승의 모습으로, 표정은 근엄하거나 엄숙한가 하면 해학적이고도 인간적인 면을 풍겨 친근감을 준다. 심산유곡을 배경으로 옆에는 1~2명의 동자를 거느리거나, 신통력의 표시로 용이나 호랑이 등 신령스런 동물을 수반하기도 한다. 배경에 묘사된 암반과 나뭇가지의 표현은 당시 산수화풍을 반영하고 있으며, 향완(香)·향탁·향함·정병 등은 금속공예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