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김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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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3. 11. 24, 경북 경주
사망 1995. 6. 17,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시인·소설가. 인간성 옹호에 바탕을 둔 순수문학을 지향했으며 8·15해방 직후 좌익문단에 맞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역마>, <화랑의 후예>, <무녀도>가 있다.

 김동리(金東里)
김동리(金東里)

인간성 옹호에 바탕을 둔 순수문학을 지향했으며 8·15해방 직후 좌익문단에 맞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본명은 시종. 이명은 창귀. 아명은 창봉.

임수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경주제일교회부설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계성중학교에서 2년간 공부했다. 서울로 올라와 경신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낙향하여 박목월 등과 사귀며 동서양의 고전에 심취, 인간과 자연과 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1933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김달진·서정주 등의 〈시인부락〉 동인들과 사귀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같은 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된 후 〈망월 望月〉·〈고목〉 등을 발표했으나, 곧 시창작을 중단하고 소설로 전향했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면서 이주홍·조연현·최인욱·홍구범 등과 사귀었다. 이때 받은 상금으로 다솔사·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쓴 소설 〈산화 山火〉가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당선되어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후 〈바위〉(신동아, 1936. 5)·〈무녀도〉(중앙, 1936. 5)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나, 다솔사로 다시 들어가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우고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1940년까지 〈황토기〉(문장, 1939. 5)·〈찔레꽃〉(문장, 1939. 7)·〈동구 앞길〉(문장, 1940. 2)·〈다음 항구〉(문장, 1940. 9) 등을 계속 발표했으나, 일제의 어용문학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하는 것을 거절, 광명학원이 강제 폐쇄되어 만주지방을 방랑했다. 1945년 경남 사천에서 8·15해방을 맞이한 뒤, 곧 서울로 올라와 민족주의 문학진영에 가담했다. 특히 김동석·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통하여 우익측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로 두드러졌다.

좌우문학진영과의 이론 대립이 치열했던 때에 발표한 평론 〈순수문학의 진의〉(서울신문, 1946. 9. 15)·〈문학과 자유의 옹호〉·〈순수문학과 제3세계관〉(대조, 1947. 8)·〈민족문학론〉(대조, 1948. 8) 등은 이론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던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논리화·체계화시킨 글로 평가되었다.

그는 이론투쟁과 아울러 조직력을 중시했다. 박종화·이하윤·김진섭 등이 중심으로 있던 중앙문예협회의 불투명한 성격을 거부하고, 서정주·조연현·곽종원·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다. 정부수립 때까지 이 단체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윤회설〉(서울신문, 1946. 6. 6~26)·〈혈거부족 穴居部族〉·〈달〉(문화, 1947. 4)·〈역마〉 등을 발표했다. 1947년 〈경향신문〉 문화부장, 1948년 〈민국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고, 오랫동안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문예지의 발행에도 힘써 1949년에 창간한 〈문예〉와 1968년에 창간한 〈월간문학〉의 주간을 지냈다.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58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7년 3·1문화상,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0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다. 창작집으로 〈무녀도〉(1947)·〈황토기〉(1949)·〈귀환장정 歸還壯丁〉(1951)·〈사반의 십자가〉(1958)·〈등신불〉(1963) 등과,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문학개론〉(1952)·〈문학이란 무엇인가〉(1984) 등을 펴냈다.

무녀도
무녀도

문학세계

초기의 문학적인 특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낸 작품은 〈무녀도〉이다. 이 소설은 무당 모화와 딸 낭이, 그리고 낭이의 배다른 오빠 욱이라는 인물을 통해 종교적 충돌과 이로 인한 인간 내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즉 우리나라 토속적인 샤머니즘과 외래사상인 기독교의 대립 속에서 현실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고유 사상의 역설적인 삶의 한 양식을 무당 모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무녀도〉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작은 〈황토기〉이다. 이 작품은 설희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이에 둔 천하장사 억쇠와 득보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쌍룡의 전설을 상징화시킨 이 소설은 인생의 허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허무의 세계는 〈무녀도〉의 신비적이고 몽환적인 세계와 더불어 김동리의 초기 문학을 지탱하는 양대 지주였다.

중기는 〈혈거부족〉을 시작으로 하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해방 이후에 쓴 〈미수 未遂〉·〈달〉·〈역마〉 등과 함께 그가 해방 직후에 제기했던 순수문학론, 본격문학론, 제3휴머니즘론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초기의 작품세계, 즉 신비적·허무적 색채를 가미한 인간성의 옹호 및 생(生)의 근원에의 집착이라는 문학적 토대에 사상적인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었다.

1955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흥남철수 興南徹收〉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전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후기의 작품세계는 이념과 인간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같은해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한 〈밀다원시대 密茶苑時代〉와 〈문학과 예술〉 6월호에 발표한 〈실존무 實存舞〉에서는 전쟁 이후 지식인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1955년부터 1957년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한 〈사반의 십자가〉는 김동리 스스로가 "작가생활 35년 만에 비로소 작품다운 작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뜻깊은 작품이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추구하는 사반과, 영혼의 구제와 내세적·천상적인 영광만을 추구하는 예수의 대립을 기본 구성으로 주로 비유와 상징으로 꾸며져 있다. 즉 예수와 사반의 대립을 통해 육체와 영혼을 스스로 대극점에 놓고 있는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세계는 1963년에 발표한 〈등신불〉에 이르러 더욱 강화된다.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만적 스님의 인생과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정원사에 숨어 있는 주인공 '나'의 삶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부처는 이미 인간이 아니며, 만적은 소신공양함으로써 인간과 부처를 동시에 체현했음을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사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소재를 빼어난 기교로 잘 처리한 소설가이다.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신비감과 허무감이 내재된 인생의 근원적 본질 추구 등을 통한 '인간성'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고, 이같은 관심은 내용으로서의 '인간'과 형식으로서의 '미'(美)라는 입장으로 반영되어 문학적 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