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김광균

다른 표기 언어 金光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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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4. 1. 19, 경기 개성∼
사망 1993. 11. 23,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시인. 모더니즘 시운동의 정착에 이바지했다. 대표작으로 <추일 서정>, <설야> 등이 있다.

김기림에 의해 도입되고 이론화된 모더니즘 시론을 주조로 하여 1930년대 후반 모더니즘 시운동의 정착에 이바지했다.

송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산과 용산 등에서 공장 사원으로 일하면서 시를 썼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뒤 〈병〉(동아일보, 1929. 10. 19)·〈야경차〉(동아일보, 1930. 1. 12) 등을 발표했다. 1936년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다. 초기에 쓴 시 27편을 모아 제1시집 〈와사등 瓦斯燈〉(1939)을 펴냈다.

8·15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관계하면서 이념 대립을 지양하는 '제3문학론'을 내세웠으나, 곧 문단을 떠나 사업에만 열중했다. 8·15해방 이전까지 쓴 시 19편을 모아 제2시집 〈기항지 寄港地〉(1947)를 펴냈다. 6·25전쟁 이후 건설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제3시집 〈황혼가〉(1957)를 펴냈다. 당대의 비평가 김기림·백철이 "청각조차 시각화하는 기이한 재주", "무형적인 것을 유형화하는 능력"으로 평가했듯이 그의 시는 현대문명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풀어내는 언어의식 및 회화적 이미지 같은 모더니즘론에 근거했다.

그의 시는 자신이 꾸며낸 세계와 상상력에 의한 사물 제시보다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그려내면서, 시적 구조에 있어 공간성을 긍정하고 도시 문명의 혼란 속에서 현대성을 찾는 시어를 사용한 특징을 가진다. 특히 본격적인 의미의 모더니즘 시보다는 독특한 의미의 이미지즘 시를 보여주었는데, 그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간적 형식의 탐구로 현대 문명이 음악적 본질보다는 회화적 본질, 즉 추상보다는 구체, 청각보다는 시각으로 조직된 까닭에 문명의 탐구는 공간적 이미지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의 시에서 이러한 공간성은 자연과 문명 등 시간적·지리적으로 단절된 이중구조로 나타난다.

둘째, 대상을 시각적·회화적 이미지로 한정해야만 사물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색채감각어를 자주 썼다. 이미지를 감각적 형태에 응결시키고 사물 자체를 직접적으로 정밀하게 한정하는 태도는 서구 이미지즘 시의 창작원리를 따른 것이다.

셋째, 그는 감상적 정서의 표출로서 단순히 주관적으로 나타나는 낭만주의적 감상이 아닌, 객관화되어 특정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감상성은 주로 회복되지 않는 과거 및 실향의식으로 나타나 단절된 역사의식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소외의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적 체험과 동떨어진 몽롱한 분위기를 강조해 모더니즘의 미학적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과거와 현실 사이의 불연속, 단절감에서 비롯된 감상성은 시 구조상 이질적인 공간 구조를 형성했지만 T. E. 흄이 제시한 불연속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있다. 또 문명비판의 태도 역시 전통과 역사의식에 의거한 문명의 재생을 바탕으로 하는 T. S. 엘리엇의 문명관과 다르게 소외의식만을 강조한 것은 모더니즘 시로서 그의 시의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