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

백철

다른 표기 언어 白鐵 동의어 백세철, 白世鐵, 시라야 세이데쯔, 白矢世鐵, 시라야 데쯔오, 白矢鐵雄, 시라야 데쯔, 白矢鐵, 백시철, 세철, 世哲
요약 테이블
출생 1908. 3. 18, 평북 의주
사망 1985. 10. 13, 서울
국적 한국

요약 백철은 광복 이후 외국의 신비평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문학비평계의 기반을 쌓았다. <조선신문학사조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 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문학사계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일본으로 유학가 일본 문단에서 활동하다 1931년 귀국해 카프의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때 해외문학파와 논쟁을 벌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4년 카프 제2차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1년 6개월 수감되었다 풀려났다. 8·15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시기엔 한국의 근대문학사를 사상과 사조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인 〈조선신문학사조사〉의 집필에만 전념했다. 1963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위원장, 1972년엔 일본문화연구 국제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문학을 외국에 소개하는 데에도 공헌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기를 거쳐 8·15해방 이후 신비평 이론을 소개하는 등 한국 문학비평에 있어서 대들보 역할을 했다.

본명은 세철(世哲).

소지주인 무근(茂根)의 아들로 태어나 13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다가, 1921년 신의주공립보통학교 6학년에 편입했다. 1922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1927년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도쿄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무렵 〈지상낙원〉·〈전위시인〉의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NAPF)에 가입했다.

1931년 귀국해 개벽사에 입사하면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중앙위원이 되었고, 이때 해외문학파와 논쟁을 벌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4년 카프 제2차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전주형무소에서 1년 6개월 수감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동아일보〉에 〈비애의 성사(城舍)〉라는 제목의 출옥소감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문학이 과거와 같은 의미에서 정치주의를 버리고 마르크스주의의 태도를 버리는 것은 비난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크게 찬하해야 할 현상"이라면서 전향을 선언했다. 즉 인간탐구의 문학을 내세우면서 유형화된 이념적 인간보다는 소극적일지라도 양심적인 인간을 그릴 것을 주장한 것이다. 1939년 〈매일신보〉 문화부장을 지냈고, 1942년 중국 북부지방 특파원으로 있다가 8·15해방 직전에 귀국했다. 8·15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신문학사조사〉의 집필에만 전념했다. 1955년 중앙대학교 문리대학 학장, 1957년 미국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교환교수로 다녀왔고, 1963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위원장,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대회 회장을 지냈고, 1972년 일본문화연구 국제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문학의 국제적 이해를 도모했다.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평론세계

1931년 평론 〈농민문학문제〉(조선일보, 1931. 10. 1~20)를 통해 안함광이 농민문학의 목표는 빈농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주입이라고 한 것은 기계주의적인 좌익편향에 잠재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뒤 〈창작방법문제〉(조선일보, 1932. 3. 9~10)와 프루스트의 신심리주의 문학을 비판한 리얼리즘 문학론인 〈현대문학의 신심리주의적 경향〉(중앙, 1933. 11)·〈비평의 신임무〉(동아일보, 1933. 11. 15~17) 등을 발표했다.

1933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도식성을 비판한 〈문단시평-인간묘사시대〉(조선일보, 1933. 8. 29~9. 1)를 발표해 카프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계속해서 인간탐구가 문학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가가 개성을 버리고 서구의 문예사조에 휩쓸리는 것을 비판한 〈문예시평-금일창작의 음미-낭만인가? 진실인가?〉(조선일보, 1936. 3. 18~28),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현실에 굴복한 지식인을 옹호한 〈고민과 문학〉(조선일보, 1936. 4. 23~24), 새로운 리얼리즘 문학론인 〈인간탐구의 문학〉(사해공론, 1936. 6), 인간성을 존중한 〈휴머니즘의 본격적 경향〉(청색지, 1938. 8), 보편적 개성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개성과 보편성〉(조광, 1938. 10) 등을 발표했다. 나아가 웰렉 등의 신비평 이론을 소개하는 〈뉴크리티시즘에 대하여〉(문학예술, 1956. 11)를 발표해 기존의 작품해석이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적 상황에 근거한 점을 비판했다. 그뒤 〈다시 행동적 휴머니즘의 시대〉(새벽, 1960. 12)·〈세계문학과 한국문학〉(사상계, 1962. 11) 등을 발표했다. 저서로 1948년 〈조선신문학사조사〉를 펴낸 뒤, 〈문학개론〉(1954)·〈문학의 개조〉(1958)·〈비평의 이해〉(1968)·〈백철문학전집〉(1972)·〈국문학전사〉(이병기 공저, 1985) 등을 펴냈다. 1963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2년 국민훈장모란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