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광대

다른 표기 언어 clown , 廣大

요약 광대는 특이한 분장, 옷차림, 바보스런 행동, 익살 등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광대의 연기는 노골적이고 생생한 묘사, 엉뚱한 상황의 연출, 활기찬 행동이 특징이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아를레키노·할러퀸이라고 부르는 광대의 전형을 개발했다. 17세기 영국의 무대 광대가 독일에 전해졌는데, 독일 배우 픽켈헤링이 입던 큰 구두, 조끼, 모자, 풀을 빳빳하게 먹인 크고 높은 주름의 칼라가 달린 광대옷은 지금도 거의 변함없이 등장한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광대 분장은 17세기 후반 프랑스 광대 피에로가 등장하면서 도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초반 팬터마임 연기자 장 바티스트 가스파르 드뷔로는 사랑에 번민하며 애수에 찬 피에로를 창조했다. 영화에서의 광대는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인물이 가장 유명하다.

광대(clown)
광대(clown)

특이한 분장과 옷차림, 바보스런 행동, 익살 등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전통극에 나오는 바보나 궁정의 어릿광대와는 달리 노골적이고 생생한 묘사, 엉뚱한 상황의 연출, 활기찬 행동이 특징인 일련의 작품을 연기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번영을 누린 광대의 조상들은 대머리에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습을 하고 소극(笑劇) 또는 마임에서 주요인사들의 행동을 흉내내고 땅콩 등을 구경꾼에게 던지는 등 조연 역할을 했다(→ 그리스 연극). 똑같은 광대가 로마 마임에도 등장하는데 뾰족한 모자에 얼룩무늬의 길고 품이 큰 누더기를 입고 온갖 잔재주를 부리다가 조롱거리가 되거나 동료배우들을 골탕먹이는 역할을 하였다.

광대놀이는 중세 음유시인과 곡예사들 연기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는데, 광대가 직업적인 희극배우로 등장한 시기는 여행하는 예능인들이 궁정의 어릿광대의 익살과 축제 때 희극을 전문으로 연기했던 '앙팡 상 수시'(Enfants san Souci) 같은 아마추어 광대들을 흉내내던 중세말이었다.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순회극단들은 16세기 후반경 가장 유명했고 오래 지속된 아를레키노 또는 할러퀸이라고 부르는 광대의 전형을 개발하여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다(→ 코메디아 델라르테). 할러퀸은 희극적인 협잡꾼 또는 알랑쇠로 시작했지만 곧 검은 반가면(半假面)을 쓰고 박쥐나 요란한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상대방의 궁둥이를 세게 걷어차는 등 법석을 떠는 희극적인 협잡꾼으로 발전하였다.

영국의 광대는 중세신비극에 나오며 때로는 악마까지 속이는 익살꾼과 장난꾸러기 악한(the Vice)에서 유래했다.

초기 직업적인 무대 광대 중에는 유명한 윌리엄 켐프와 로버트 아민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연기했다. 무대 광대를 독일에 소개한 것은 17세기 영국의 순회극단 배우들인데, 독일 배우 중 픽켈헤링은 19세기까지 매우 인기가 있었고 그와 그 동료들이 입던 터무니없이 큰 구두, 조끼, 모자, 풀을 빳빳하게 먹인 크고 높은 주름의 칼라가 달린 광대옷은 지금도 거의 변함없이 무대에 등장한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는 광대 분장은 17세기 후반 대머리에 얼굴에 분칠을 한 프랑스 광대 피에로가 등장하면서 도입되었다고 전해진다.

피에로는 맨 처음 아를레퀸의 조롱 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점차 부드럽고 우수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19세기 초반 피에로를 연기한 팬터마임 연기자 장 바티스트 가스파르 드뷔로는 그 유명한, 사랑에 번민하며 애수에 찬 피에로를 창조하였는데 피에로의 우수는 그후로도 광대와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서커스 광대는 조지프 그리말디이다.

그는 1805년 영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 '조이'라고 사랑스럽게 불리는 그는 재주넘기, 엉덩방아, 떠들썩하게 치고 박는 연기를 특히 잘했다. 1860년대 저속한 코메디 익살꾼이 어거스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는데, 그는 큰 코에 헐렁한 옷, 커다란 구두를 신고서 난잡한 행동을 하고, 흰 얼굴의 광대와 함께 엉뚱한 때 튀어나와 항상 일을 그르쳤다.

그로크(Grock)는 희게 분장한 팬터마임 연기자로 그의 세련된 우수는 미국의 방랑자 광대 애멋 켈리를 연상시켰다.

영화에서의 광대는 잘 맞지 않는 옷에 뒤뚱거리는 평발 걸음에 애교있는 행동으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불후의 인물 '작은 방랑자'로 정상을 이룩했다(→ 채플린).

한국의 광대

우리나라는 전문적으로 연희(演戱)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을 광대라고 불렀다. 광대는 그 출신성분과 하는 일, 소속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이 쓰였는데 ① 얼굴, ② 얼굴에다 물감을 칠하는 것, ③ 가면(假面), ④ 가면을 쓰고 노는 사람, ⑤ 창우·우인(優人)·재인(才人) 등의 뜻도 있다. 광대는 노래·소학지희(笑謔之戱)·판소리·가면극·인형극·춤·곡예 등 흥행물이 될 수 있는 민속예능의 거의 전분야를 두루 했다.

광대는 8천(八賤)에 속하는 천민으로 양수척(楊水尺)·백정의 신분이다. 무당과도 특별한 관계가 있었는데 무당의 남편인 무부(巫夫)가 광대로 되는 일이 흔했다. 놀이 이외에 다른 생업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걸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사당패같이 유랑을 하기도 했는데, 늘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산대희(山臺戱) 등의 국가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과거급제자의 유가(遊街) 등으로 양반에게 재주를 팔기도 했고, 일반 민중을 상대로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광대들은 판소리라는 장르를 통해 조선 후기 평민문학을 형식·내용면에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전문 판소리광대의 출현은 조선 후기 광대의 성장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소리광대들이 대거 출현하여 판소리 12마당을 확장·발전시키면서 명창으로 불리는 자들은 양반에 불려가 높은 대접을 받으며 소리를 팔고 벼슬까지 얻은 자가 생겨났다.

광대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세분될 수 있다.

첫째, 관민의 관계에 따라 궁중광대·관청광대·재야광대·절충형 등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소리와 기예가 달랐다. 둘

째, 생활방식에 따라 유랑광대·향인(鄕人)광대·절충형 등이 있었다. 남사당패·대광대패·굿중패·솟대쟁이패 등의 조선 후기 유랑광대들 사이에는 반드시 가무잡기(歌舞雜技)를 펼쳐서 먹고 사는 전문 예인광대들이 동참했다.

셋째, 전문예능에 따라 소리광대·탈광대·곡예광대(줄타기나 살판 등을 노는 광대)·춤광대·잽이광대(三絃六角을 전문적으로 하는 광대)·풍물광대·익살광대·덜미(인형)광대·절충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넷째, 출신 성분에 따라 무계(巫系)·농민계·승려계·유랑인계·한량계·몰락양반계·불구자계·시장상인계·절충계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광대들은 광대청(일명 才人廳·神廳)이라는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그들의 권익과 생계를 유지했다. 각 도의 우두머리를 대방이라 했으며, 대방 밑에 우도 도산주(都山主)와 좌도 도산주를 두어 한 도를 좌우로 관장했다.

도산주는 대방을 도와 중요한 사항을 의논·처리했으며, 실무에 집강(執綱)·공원(工員)·장무(掌務)를 두었고 군 단위에는 청수(廳首)라는 우두머리와 공원·장무를 두고 운영했다. 광대청은 광대들의 교육 전수·공연활동·연락·준비·행사관리 등을 맡았다. 누구나 오랜 시일에 걸쳐서 학습을 받아 스스로 예(藝)를 깨우쳐 전문예인의 길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