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다른 표기 언어 advertising , 廣告

요약 광고의 목적은 주로 광고내용에 대해 대중이 일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광고의 발전은 인쇄술의 발달로 가능했다. 17세기 런던에서 발행된 주간지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으며, 19세기 산업의 발달은 광고산업을 성장시켰다.
주요 광고매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다. 잡지는 일반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스포츠·컴퓨터·문학에 관심 있는 특정 독자를 겨냥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라디오를 통해서는 프로그램 중간이나 프로그램들 사이에 방송되는 1분 이하의 스폿광고를 할 수 있다. 그외 우편·옥외광고판·벽보·판촉물을 비롯한 많은 매체가 있다.
효과적인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지식과 매체의 요령 있는 사용에 바탕을 두고 광고를 제작하고 게재해야 한다.

광고(advertising)
광고(advertising)

주로 광고내용에 대해 대중이 일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의 광고는 상품의 판매촉진과 깊은 관계가있으나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운전을 유도하거나 많은 자선사업을 지원할 때, 또는 정치후보자들에게 투표하게 할 때도 상품광고와 비슷한 방법이 사용된다. 많은 나라에서 광고는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며, 비공산권 세계에서는 수십억 달러에 상당하는 시장이 되어 왔다.

고대와 중세의 광고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근대 광고로의 첫번째 전진은 15세기와 16세기에 이룩한 인쇄술의 발달로 가능했다. 17세기 런던에서 발행되는 주간지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 그와 같은 광고가 성행했다. 19세기 대대적인 산업의 발달은 광고산업을 성장시켰다. 미국에서 광고대행사가 등장했던 때도 바로 19세기였다. 초기의 광고회사는 신문지면을 확보해주는 중개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초에 이르러 광고회사는 광고문안과 삽화를 비롯해 광고 메시지를 직접 만들게 되었으며 1920년대에는 최초의 조사단계부터 광고문안 준비, 그리고 여러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광고전략을 계획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광고에 이용되는 주요한 매체는 대략 8개 정도가 있는데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신문일 것이다.

신문은 광고주에게 많은 발행부수, 광고주의 사업연고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독자층, 그리고 정규적으로 자주 광고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다른 주요 인쇄매체인 잡지는 일반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야외 스포츠나 컴퓨터, 문학에 관심이 있는 특정 독자를 겨냥할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관심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고객이 될 만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전국 규모의 많은 잡지들은 지방판을 발행하여 그 지방 특성에 맞는 광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서구의 산업화된 나라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매체는 텔레비전라디오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국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광고가 허용되지 않지만, 그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광고주들이 1분 이하의 스폿 광고를 할 수 있는 방송시간을 살 수 있다.

스폿 광고는 정규프로그램 중간이나 프로그램들 사이에 방송되는데, 그 시간은 광고주가 지정하거나 방송사가 정할 수 있다.

광고주가 광고를 내보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특정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청자나 청취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며 그 구성비율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용자, 매스 미디어). 시청자나 청취자의 수는 방송사가 광고주에게 청구할 금액의 결정요소이고, 구성비율은 광고주가 특정한 대중을 겨냥한 광고메시지의 방송시간을 선택하도록 하는 결정 요소이다.

그밖의 광고매체로는 더욱 세밀하고 개개인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직접 우편, 옥외광고판과 벽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광고, 성냥갑이나 달력과 같은 판촉물, 전시장을 비롯한 잡다한 매체 등이 있다(→ 간판).

효과적인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지식은 물론 매체의 요령있는 사용에 바탕을 두고 광고를 제작·게재해야 한다.

광고대행사는 복합적인 광고 캠페인을 구성하며,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전략은 시장에서의 인구통계학적 분석과 소비자행동의 조사를 기초로 한다. 광고주가 광고 메시지를 가장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보게 하고 또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해서, 광고전략은 광고 메시지의 독창적인 제작과 함께 매체를 통해 광고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도 빈틈없는 계획과 선정작업을 수반해야 한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광고주는 근본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광고주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광고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게 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즉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적은 횟수의 광고를 할 것인가, 아니면 적은 사람을 대상으로 여러 번의 광고를 할 것인가가 결정된다.

이러한 선택을 비롯한 여타의 전략적 결정은 광고 캠페인의 유효성 검증에 비추어서 내려진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상품이 시판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광고의 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광고를 효과적으로 하는 것은 회사의 생존을 좌우한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어떤 회사의 상품에 대해 모른다면 그 상품을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고 비용이 상품가격에 포함됨으로써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상품가격을 지불하게 되고 광고주의 광고 비용을 대신 부담하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이와는 반대로 광고가 상품의 대량생산 및 소비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격을 내리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주요 광고 캠페인의 비용이 너무 높아 단지 몇몇 회사만이 광고비용을 부담할 수 있고, 따라서 광고는 이 몇몇 회사가 시장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반면에 소규모 회사들이 전국적인 규모로 큰 회사들과 경쟁할 수는 없지만 지역적 규모로 광고를 함으로써 그들의 위치를 굳힐 수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또한 광고주가 자신이 이용한 매체의 정규내용, 즉 신문 사설의 논조나 텔레비전 쇼의 성격에까지 지나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로 재정적으로 튼튼한 대중매체의 경우, 광고를 싣기 위해서는 그 대중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광고주의 간섭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왔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특정 광고주와 매체 주체성을 위태롭게 하는 어떠한 타협이라도 한다면 결과적으로 광고를 접하게 되는 매체의 이용자들을 잃게 될 것이다.

한국의 광고

어느 사회에서나 광고의 역사는 간판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점의 소재와 판매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종류를 알려주는 간판이 가장 초보적인 광고의 형태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간판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간판이 있었다고 한다.

근대적인 광고의 역사는 근대적인 언론의 생성·발전과 맥을 함께 한다.

1883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漢城旬報〉가 창간되어 근대 언론의 막을 올림으로써 이 땅에 근대적 광고가 성립될 수 있는 기반도 조성되었다. 〈한성순보〉에는 광고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광고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한성순보(漢城旬報)
한성순보(漢城旬報)

1883년 11월 20일자에 보면, 〈회사설 會社說〉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주지(主旨)를 세상 사람들에게 광고하여 동지를 얻는다"고 하여 초보적이나마 광고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광고는 1886년에 창간된 〈한성주보 漢城周報〉에 나타났다. 1886년 2월 22일자(제4호)에 '덕상세창양행광고'(德商世昌洋行廣告)라는 제목으로 실린 24행의 광고가 우리나라 근대 광고의 효시이다.

신문에 광고란이 고정적으로 등장하여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이다.

이후 한말의 민간신문들에는 상당한 양의 광고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때의 광고는 아직 신문의 운영에 커다란 도움을 주지는 못했으며, 광고주도 대부분 제국주의 열강의 상점과 회사들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당시의 광고가 이들의 우리나라 시장침투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는 역설적인 평가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 창간된 〈동아일보〉가 주요 광고매체의 역할을 했다.

자료가 밝혀져 있는 〈동아일보〉의 경우, 창간초에는 우리나라 광고가 더 많았으나, 1925년 이후에는 일본광고의 양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동아일보〉에서는 1926년에 첫 광고상을 설정해, 광고도안현상투표에 의해 1등경성방직, 2등 동아부인회, 3등 화평당을 시상했다.

8·15해방 이후 방송매체의 출현 및 성장과 함께 광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라디오에 광고가 도입된 것은 1959년 부산문화방송의 설립을 계기로 상업방송이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서울에서 문화방송, 동양방송, 동아방송 등이 생기면서 방송광고의 새 장을 열어갔다. 한편, 1956년에 미국 RCA사의 후원으로 설립된 HLKZ-TV는 광고로 운영되는 상업방송의 형태로 출발하였으나, 제반여건의 미숙으로 말미암아 오래 가지 못하고 1959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본격적인 텔레비전 시대가 열린 것은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이다.

그해 12월에 KBS-TV가 개국하여 1963년부터는 텔레비전 광고가 시작되었고, 1964년 TBC-TV, 1969년 MBC -TV 등 민간 상업방송이 시작되면서 텔레비전이 광고의 핵심적 매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광고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80년 11월부터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고, 1981년 4월부터 광고방송도 컬러화되면서 텔레비전이 광고매체의 선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4년에는 총광고비가 광고의 선진국 수준인 국민총생산의 1%선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1981년 1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등장은 광고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으며, 그에 따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방송의 광고영업권을 독점하면서 매체사와 광고대행사로부터 광고비의 일정액을 떼어 언론의 공익자금을 조성함으로써 광고업계의 업무관행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의 정당성 여부에 관해 많은 논란이 뒤따르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광고계는 또 하나의 커다란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불리는 시장개방 압력 속에 광고시장도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부터는 외국광고대행사의 국내시장 진출이 허용되어 국내에서 광고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발달된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의 광고대행사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광고계가 안고 있는 당면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