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고시

다른 표기 언어 ku-shih , 古詩 동의어 고체시, 古體詩

요약 한시체의 하나.
(병). Gu Shi. (웨). Ku Shih.

중국 고체시의 약칭. 고시는 원래 한(漢)·위(魏) 시기에 쓰여진,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고 음악에도 맞지 않는 〈고시 19수 古詩十九首〉 같은 종류의 문인시(文人詩)를 가리켰다. 또 〈고시위초중경처작 古詩爲焦仲卿妻作〉이나 〈십오종군정 十五從軍征〉 같은 악부시를 고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고시의 또 다른 뜻은 율시·절구 등의 근체시와 대립되는 의미이다. 고시는 쓰이는 운이 다양하고 성조와 격률에 얽매이지 않으며, 길이 또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시체는 당대에 근체시가 발생한 뒤에도 계속 유행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고체시를 '고풍'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 고시 가운데 최초의 작품은 〈태평송 太平頌〉을 꼽는다(→ 한문학). 이 시는 신라 28대 진덕여왕이 당나라 고종에게 보낸 것으로 외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당의 발전을 찬양하고 친선을 도모한 작품이다. 신라말 최치원의 〈강남녀 江南女〉는 방탕한 강남의 여성을 가난한 이웃집의 비단짜는 아낙네와 비교하여 풍자한 시이다. 고시는 근체시에 비해 형식의 제약을 덜 받고 길이의 제한이 없으므로 장편의 서사시에 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농민들이 겪는 부역의 괴로움과 수탈의 가혹함을 표현하는 애민시 계열의 작품이 고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석형(李石亨: 1415~77)의 7언고시〈호야가 呼耶歌〉는 새로운 도읍건설을 위한 토목공사 때문에 동원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그렸다. 김시습의 〈기농부어 記農夫語〉에서는 한 자영농민이 부역과 세금,지방토호의 수탈로 인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긴 과정을 농민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안눌의 〈사월십오일 四月十五日〉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온 부산 동래의 비참한 상황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조선 후기 고시의 특징으로는 민요의 정서를 수용하고 당대 현실에서 소재를 선택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민요 〈모심기노래〉를 소재로 창작한 것이라든가 일상의 속어를 사용하여 서민의 감정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였다. 장편의 고시가 많이 창작되어 한 인물의 일대기와 같은 서사적 내용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정약용의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 道康瞽家婦詞〉는 한 여성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360행의 장편 서사시이다.

김려(金鑢)의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 古詩僞張遠卿妻沈氏作〉은 720행에 이르는 장편 고시로서 신분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평등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진보적인 주제를 지니고 있다. 또한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특히 어촌에서 고기잡이 하는 노동현장과 전복 채취하는 어민들이 탐관오리에게 고통당하는 실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고시는 서사를 위주로 하면서도 강렬한 서정성을 담고 있으며, 당대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어 문학적으로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