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농민 봉기

고부 농민 봉기

다른 표기 언어 古阜農民蜂起 동의어 고부민란, 古阜民亂

요약 1894년 1월 전봉준이 이끄는 1,000여 명의 고부 농민들이 일으킨 농민항쟁

동학농민혁명의 전초전적 성격을 가진다.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은 민보를 축조한다는 명분으로 농민들을 강제 동원했으며, 부당한 수세를 징수하여 700여 석을 가로챘고, 자기 아버지를 위한 비각을 건립한다는 명목으로 농민들로부터 1,000여 냥을 거두었으며, 대동미를 좋은 쌀로 거두고 나쁜 쌀로 상납하여 이익을 착복했을 뿐만 아니라 불효·불목·음행·잡기 등의 죄목으로 농민들의 재물을 빼앗았다.

1893년 11월부터 전봉준 등 농민들은 이에 맞서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며 봉기를 준비했다. 1894년 1월 11일 농민들은 전봉준의 지휘하에 관아를 습격하여 군수를 내쫓고 아전들을 징벌했다. 관아에 있는 곡식은 풀어서 농민들에게 분배했으며 10여 일 간 폐정을 처리한 후 일단 해산했다. 정부에서는 조병갑을 처벌한 뒤 장흥 부사 이용태(李容泰)를 파견했으며 이용태는 봉기에 참여한 농민과 가족을 학살하였다. 그해 3월 전봉준 등이 전라도 무장에서 김개남 등과 함께 8,000명 가량의 농민군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발전하게 된다.

전봉준(全琫準)
전봉준(全琫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