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체가

경기체가

다른 표기 언어 京幾體歌 동의어 경기하여가, 景幾何如歌, 경기하여체가, 景畿何如體歌, 별곡체, 別曲體, 별곡체가, 別曲體歌

요약 경기하여가, 경기하여체가, 별곡체, 별곡체가 등으로도 불린다. 후렴에 나오는 "경긔엇더니잇고"의 구절 때문에 경기체가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26편으로 고려시대의 것이 3편, 조선시대의 것이 23편으로 13세기 중기부터 19세기 말기까지 분포되어 있다. 경기체가의 주요 향유층은 고려 후기의 신흥 사대부 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 득의양양하고 도도한 태도 등이 주된 특징이다.

목차

접기
  1. 개요
  2. 기원과 작품
  3. 작자
  4. 형식

개요

경기하여가, 경기하여체가, 별곡체, 별곡체가 등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후렴에 나오는 "경(景)긔엇더이미지니잇고"라는 구절을 근거로 경기체가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원과 작품

기원과 발생에 대해서는 다른 갈래보다 불확실하여, 향가, 고려속요, 민요, 중국의 사(詞)나 사륙문 등 여러 이설이 있다. 그 이전의 시가 양식에서 경기체가의 모태를 여러 가지로 추정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타당성을 확인받을 만한 견해가 없으며 추론에 그치고 있다.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26편으로 그 가운데 고려시대의 것이 3편, 조선시대의 것이 23편으로 13세기 중기부터 19세기 말기까지 분포되어 있다. 조선 전기를 지나면서 현저하게 쇠퇴하여 16세기 중기 이후에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작자

경기체가의 성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작자와 향유층은 고려 후기의 신흥 사대부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림별곡(翰林別曲)>을 지은 여러 유학자들, <죽계별곡(竹溪別曲)>과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은 안축이 이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려 후기에 역사의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 계층으로서 한시 창작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욕구를 경기체가 형식을 이용하여 표출했다.

경기체가는 무신집권기 문인의 현실 도피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했지만, 고려 후기에 등장한 신흥 사대부의 세계관과 미의식의 한 반영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특징으로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 득의양양하고 도도한 태도 등이 지적되고 있다.

형식

경기체가는 형식의 구속이 유난히 완강한데 그 표준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한림별곡〉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연과 연이 구분되는 분련체(分聯體)의 형식이며, 전절(前節)과 후절(後節)의 구분이 있다. 형태의 안정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었던 조선 전기까지의 작품을 놓고 볼 때 전절에서는 대체로 3음보격을 취하면서 사물, 행위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위……경(景)긔엇더이미지니잇고"와 같이 감탄형 문장으로 집약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절보다 짧은 후절은 음악상의 일정한 질서, 절차로 4음보격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매연은 6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개 '경긔엇더이미지니잇고" 또는 '경기하여'라는 구절이 4구나 6구에 나온다.

경기체가는 까다롭고 엄격한 형식적 제약 속에서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을 일정한 관점에 의해 선택, 재구성하고 하나의 경(景) 안에 포괄하는 정서적 감격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같은 특성을 놓고 갈래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이견(異見)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서정 갈래의 하나로 보다가 교술 갈래의 일종으로 보는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 근거로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 밖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 새로운 세계상을 창조하지 않고, 작품화되기 이전에 가졌던 문자 그대로의 외연적(外延的) 의미를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음을 들고 있다.

이와 달리 서정이나 교술의 어느 한쪽으로 귀속시키지 않고 중간·혼합적 갈래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나왔다. 그 근거로 사물·경험의 나열과 집약이 외부적 사실의 정보를 재확인하거나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실·이념의 차원과 주정적(主情的) 심미화의 차원이 특이하게 결합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조선 전기에도 경기체가는 계속 이어졌다. 대체로 이 시기의 경향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악장류의 작품으로 〈상대별곡 霜臺別曲〉·〈연형제곡 宴兄弟曲〉·〈오륜가 五倫歌〉·〈화산별곡 華山別曲〉 등이 있으며 성리학의 이념과 도덕적 교훈을 다룬 작품으로 주세붕(1495~1554)이 지은 〈도동곡 道東曲〉·〈육현가 六賢歌〉·〈엄연곡 儼然曲〉 등이 있다.

이밖에도 승려들이 찬불과 포교를 목적으로 창작한 작품도 나왔는데 〈서방가 西方歌〉·〈미타찬 彌陀讚〉·〈기우목동가 騎牛牧童歌〉 등이 그것이다. 권호문이 지은 〈독락팔곡 獨樂八曲〉은 처사적 삶의 지향을 노래한 작품인데, 이전과 비교해볼 때 일정 수준의 형식은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1860년에 민규(閔奎)가 지은 〈충효가 忠孝歌〉가 나오기는 하지만, 16세기 중기를 경계로 하여 경기체가는 급속히 쇠퇴하면서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