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

경구

다른 표기 언어 epigram , 警句 동의어 단시, 短詩

요약 원래는 기념비에 새겨넣기에 적합한 비문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그리스 사화집(詞華集)이 나온 이후부터는 짧고 간결한 시 특히 신랄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로 담은 것을 가리킴.

넓게는 소설이나 연극, 시, 담화 속에서 간단명료하게 보편적 진리를 나타내는 듯한 인상적인 문장에도 이 말이 적용되었다. 카툴루스(BC 84~54경)가 라틴어 경구를 처음 만들어냈으며 경구가 그 최종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마르티알리스(40~103)가 쓴 1,500편의 시에 이르러서였다. 통렬한 어조의 점잖지 않은 이 시들은 17~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경구작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경구는 르네상스 시기의 학자들과 시인들, 예컨대 프랑스의 클레망 마로 같은 시인을 통해 다시 발전하였는데 이들은 라틴어와 모국어로 경구를 썼다. 영국에서는 경구가 다소 늦게야 모양이 갖추어졌는데 특히 벤 존슨과 그 추종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로버트 헤릭은 그 추종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다음과 같은 우아한 경구를 남겼다.

"맵시있게 묻혀 있는 호박 구슬 속에서/한 마리의 파리를 보았소./그 유골 항아리는 작아도/클레오파트라의 무덤보다도 화려했소."

영국과 프랑스에서 경구는 시대가 바뀌어갈수록 더 신랄하고 마르티알리스풍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라 로슈푸코의 〈잠언 Maximes〉(1665)은 프랑스에서는 경구의 최고 수준작 중 하나로, 볼테르 같은 후세 경구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국에서는 드라이든과 포프, 스위프트가 가장 훌륭한 경구를 지어냈다.

19세기초에 작품활동을 했던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1~1834)는 경구 형식을 적절하게 요약한 다음과 같은 경구를 지었다."경구란 무엇인가? 완벽한 난쟁이/간결성이 그 몸이요 재치는 그 영혼."

금언적 경구(Sinngedicht)는 18세기와 19세기초의 독일인의 취향에 아주 알맞았으며 괴테의 〈부드러운 경구 Zahme Xenien〉(1820)는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근래에 와서 영국 경구의 대가로는 오스카 와일드와 조지 버나드 를 들 수 있다.

와일드는 "냉소주의자는 모든 것의 값을 알면서도 아무것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이다" 같은 말로 유명해졌다.

쇼는 〈앤나얀스카 Annajanska〉(1919)에서 "무릇 위대한 진리는 처음에는 신성모독으로 여겨진다"는 말을 했고 파스칼은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경구는 사람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인간세계의 진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또한 날카롭고 함축성이 풍부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그리스 사화집, 잠언

마르티알리스(Marcus Valerius Martialis)
마르티알리스(Marcus Valerius Martia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