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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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상이 맺히도록 뒷면에 알루미늄이나 은을 입힌 유리판이다. 고대 그레코로만 시대와 유럽의 중세의 거울은 청동·주석·은 등의 금속으로 된 단순한 볼록 원판이었다. 16세기 베니스에서 유리 뒷면에 금속막을 입히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었는데, 철과 수은의 아말감이 쓰였다.
1835년 리비히가 유리 표면에 은을 입히는 화학적인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현대적 거울제작이 시작되었다. 망원경이나 다른 광학기기에 쓰이는 거울은 유리의 반사를 없애기 위해 앞면에 알루미늄을 입힌다.
거울은 평면이나 곡면이며 곡면거울에는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이 있다. 거울은 오랜 세월 동안 가정용품과 장식용품으로 사용되었다.

전형적인 거울은 반사에 의해 상(像)이 맺히도록 뒷면에 알루미늄이나 은을 입힌 유리판이다.

거울
거울

고대 그레코로만 시대와 유럽의 중세기에 사용된 거울은 청동·주석·은과 같은 금속으로 된 단순한 볼록 원판으로, 빛을 반사하기에 아주 좋은 광택면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 베니스에서는 평평한 유리판의 뒷면에 얇은 금속막을 입히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었는데, 철과 수은의 아말감이 쓰였다.

유리 표면을 은으로 입히는 화학적인 방법은 1835년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견했으며, 그의 발견으로 현대적 기술의 거울제작이 시작되었다.

현대식 거울은 유리판 뒷면에 있는 얇은 알루미늄이나 은의 막에 화학적 처리를 해서 만들어낸다. 망원경이나 다른 광학기기에 쓰이는 거울은 유리 자체의 아주 약한 반사를 없애기 위해 거울의 앞면에 알루미늄을 입힌다.

이 물체에 부딪히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물체에 흡수되며, 나머지는 통과한다. 어떤 매끄러운 면을 거울로 쓰려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반사해야 하며, 흡수·통과되는 빛은 가능한 한 적어야 한다. 빛을 산란이나 분산없이 반사하기 위해서는 거울면이 완전히 매끄럽거나 표면의 불규칙 정도가 반사되는 빛의 파장보다 작아야 한다(가시광선의 파장은 5×10-5㎝ 정도이다). 거울면은 평면이나 곡면이다.

곡면거울에는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이 있는데, 반사면이 곡률 중심을 향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 쓰는 곡면거울의 표면은 구형·원통형·포물면형·타원면형·쌍곡면형으로 되어 있다. 구형거울은 확대되거나 축소된 상을 맺는데, 화장용 거울 및 자동차 후시경에서 각각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원통형 거울은 평행광선을 선초점(線焦點)에 모으며, 포물면형 거울은 망원경의 거울에서처럼 평행광선을 실초점(實焦點)에 모으거나, 탐조등처럼 초점에 있는 광원으로부터 평행광선을 내기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타원면형 거울은 두 초점 중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빛을 반사시키며, 쌍곡면형거울은 초점에 위치한 물체에 대해 허상(虛像)을 맺는다.

거울은 오랜 세월 동안 가정용품과 장식용품으로 사용되었다(→ 장식예술). 역사상 최초의 거울은 손거울이었고, 몸전체를 반사할 정도로 큰 거울은 AD 1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손거울은 로마 시대부터 켈트족이 사용하였고, 중세암흑시대에는 전유럽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이때는 광을 낸 청동을 쓰기도 했지만 보통은 은으로 만들었다.

12세기말과 13세기초에는 뒷면에 금속막을 입힌 유리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뉘른베르크와 베니스가 거울생산의 중심지로 명성을 얻었다. 베니스에서 생산된 거울은 좋은 품질로 유명했다.

그곳 기술자들은 총독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술(秘術)을 다른 도시로 전파하여, 17세기 중엽에는 런던과 파리에서 거울제작이 널리 행해졌다. 일반적으로 거울의 값은 아주 각양각색이었지만 크기가 클수록 비쌌다. 당시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경외감은 어느 정도 궁전 내빈실을 장식했던 수많은 거울들 때문이었다.

17세기 말엽부터 거울과 테두리는 방을 장식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하게 되었다(→ 실내장식). 초기의 테두리는 대개 상아·은·흑단·거북이껍질 등으로 만들거나 호두나무·올리브나무·래브륨으로 쪽매붙이기를 하였다.

자수와 구슬 테두리도 발견되었다. G. 기번스 같은 공예가는 정교한 거울 테두리로 종종 장식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뒤부터는 벽난로 위 공간에 거울을 놓는 것이 전통으로 되었다.

보통 벽난로 선반 위의 장식으로 알려진 초기의 거울은 유리 테두리 안에 넣어져 있었다. 일부분을 거울로 만드는 건축구조는 더욱 정교해져서, 영국인 로버트 애덤과 제임스 애덤 형제 같은 디자이너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벽난로를 만들면서 거울을 이용해 큰 효과를 냈다.

전체적으로 거울 테두리는 그 시대의 취향을 따랐으며, 때로는 변화에도 적응하였다. 대개 테두리는 거울보다 값이 싸서 쉽게 바꿀 수 있었다.

18세기말에는 거울에 조각하는 대신 채색된 장식을 이용했으며, 테두리는 꽃무늬 또는 예스러운 장식물로 치장하였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식 금박 테두리로 둘러싸인 원형거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주로 촛대를 받치는 데 쓰였으며 19세기에 들어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또 거울제작 기술의 향상으로 체경(4개의 발이 달린 틀이 있어서 어느 곳에나 세울 수 있는 전신 거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거울들은 종종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주로 화장하는 데 쓰였다.

19세기에는 값싼 거울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우리 생활에 널리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옷장과 찬장 같은 가구의 일부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를 장식하는 데에도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