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역사

발리 역사

발리섬에서 발견된 최고의 유물은 약 5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간단한 석기류이다. 섬의 서부 츄킷(Cekit)에서 3,000년 전의 석기와 토기가 발견되었다. 발리 북서부의 슴빌란(Sembilan) 마을과 바투르 호수 동남부에서 석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발리섬 역사에서 금속기 시대는 매우 중요하다. 발리 주민의 기층문화 대부분이 이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발리섬의 금속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은 길리마눅(Gilimanuk) 유적으로 1962년 소요노(Soejono)에 의하여 100개체에 가까운 인골이 발굴되었다. 발리섬에 발견된 옹관은 서부자바섬, 남부수마트라섬, 중부·남부술라웨시섬, 숨바섬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토기모양이나 제작기법은 중부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기원전 1500년 전부터 기원후 1000년에 걸쳐서 이어진 토기문화와 연결되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동손 청동기의 출포 분포를 통해서 보면 벼농사의 전파는 말레이반도에서 수마트라, 자바를 경유하여 기원전 4~3세기에 발리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4~5세기경 이후 자바와 발리에 인도문화가 서서히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고, 인도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힌두교와 불교가 자바섬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리섬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단, 발리에 인도 힌두교가 직접 들어왔는지 혹은 자바섬을 경유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전체적인 역사를 고려하면 5세기 후반 이후부터 불교와 힌두교가 발리섬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추정된다.

9세기가 되면서 발리에서 복잡한 관개 시스템을 이용해서 벼농사를 했던 것이 비문에 씌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 판독할 수 있는 비문이 서기 882년을 나타내고, 이 비문을 기준으로 발리의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882년의 비문에는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남인도 팟라빠 구란타 문자를 바탕으로 사용된 발리 고어로 그 내용은 힌두교 시바파의 신앙, 특히 성인 아가스티야(Agastya)에 대한 찬미가 많다.

11세기에 들어 발리섬의 지배자와 동부 자바 지배자 사이에 통혼 관계가 맺어져 관계가 깊어지고, 발리왕조는 동부 자바의 크디리(Kediri) 왕조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동부 자바 크디리 왕조와 발리 와루마데 왕조 사이에 깊은 관계가 생기면서, 동부 자바 왕조 문화의 영향이 더욱 강해졌다. 이 시기 자바-힌두의 강한 영향을 받은 11세기경의 청동제 힌두신상은 발리 박물관이나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자바섬에 영향력을 펼쳤던 마자파힛 왕조는 1343년 발리까지 복속하였고 발리문화의 자바화가 진행되었다. 이것을 최후로 그 전까지의 돌에 적혀진 비문은 종적을 감추고 그 대신 야자 잎에 새겨진 왕가의 연대가 쓰이는 시대로 들어간다.

자바섬에서 세력을 넓힌 이슬람교 세력으로부터 전란을 벗어나 마자파힛 왕국의 왕족이나 승려층은 발리로 도주하였다. 그리하여 15세기 후반에 힌두교 승려, 왕족, 귀족, 학자, 예술가 등이 발리섬에 대량으로 이주하여 마자파힛 왕국멸망과 함께 발리의 역사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16세기 중반에 겔겔(Gelgel) 왕조는 최성기를 맞이하였고, 당시 발리 궁중은 자바 힌두교 궁중문화의 영향을 받아 '카위(Kawi)'라고 불리는 고전문학, 가면극, 음악, 무용, 그림자극 등의 문화가 부흥하였다. 발리 왕조와 유럽 각국과의 접촉도 이 시기에 행하여지고 유럽 열강 세력의 간섭과 침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말에 겔겔 왕조는 수도를 동쪽 꿀룽꿍(Kulungkung)에 천도하여 꿀룽꿍 왕조로 이름을 바꾸어 왕국의 존속을 도모하였지만, 꿀룽꿍 왕조를 포함해 총 9개의 소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이 9개의 소왕국이 세력을 경합하였다.

19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는 소왕국의 왕들과 조약을 맺으려 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북쪽 해안을 무단으로 침입하기 시작하였다. 발리 북부 블렝렝 왕국과 네덜란드는 3년이나 계속되는 전쟁을 치루면서, 1849년 발리를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1894년 네덜란드는 사사크족의 반란을 도와서 롬복 서부의 발리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로서 발리 북부와 롬복섬이 네덜란드에 점령을 당하자 발리 남부의 왕조도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는 60년간 세력 다툼에 의해 여러 왕국이 약화된 틈을 이용하여 발리의 각 왕국을 차례로 지배해 갔다.

1908년에서 1945년 동안 발리섬은 본격적인 식민지시대를 맞이하였다.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지배에 의해 발리섬은 유럽과 미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1920~1930년대에는 유럽과 미국 예술가와 발리 예술가들의 교류에 의해 발리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일본으로부터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포했지만, 다시 돌아온 네덜란드군과 격렬한 독립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네덜란드의 재지배에 대한 저항은 발리에서도 일어났는데, 특히 게릴라 부대를 인솔해서 장렬히 전사한 응우라 라이(I Gusti Ngurah Rai, 1917.01.30~1946.11.20)는 독립전쟁 영웅으로서, 그 이름이 발리 국제공항(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의 이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