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의 제왕이 되는 법

미팅의 제왕이 되는 법

주제 생명과학, 인문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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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나 오늘 완전 대박! 3대 3 미팅 나갔었는데 세 명 다 킹카인 거 있지.”
“대체 어느 정도였기에 눈 높은 네가 이렇게 호들갑이야.”

“생긴 건 그냥 평범했어. 특별히 키가 크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하얀 피부에 눈초리가 살짝 내려간 눈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 끌렸어. 결국엔 세 명 다 마음에 들어서 누굴 선택해야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고.”

“이상하게 끌리다니···. 좀 더 얘기해봐. 연애 기술의 대가인 언니가 분석해 줄게.”
“훗. 역시~. 알았어. 오늘 나온 사람 중에 반창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피부가 완전 구릿빛이라 무척 남자답더라. 서글서글한 눈매도 인상적이고. 그런데 뺨에 상처가 있었어. 싸워서 생긴 흉터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사나워 보이진 않고 오히려 묘한 남성다움이 느껴졌어. 언니, 나 이상한 취향인 거야?”

“호호~. 이상한 건 아니야. 사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에 난 상처를 힘든 시련을 극복한 증표라고 여기고 이를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거든. 영국 리버풀대와 스털링대 연구팀이 220명의 남녀에게 상처가 없는 얼굴 사진과, 같은 얼굴인데 상처를 그려 넣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여자들은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를 더 매력적이라고 선택했대.”

“정말? 음···. 하지만 보통 용모가 단정하고 피부가 좋은 사람에게 끌리지 않아?”
“그건 칼에 베인 것처럼 폭력이 연상되는 상처일 때만 매력적으로 보여서 그래. 여드름이나 수두 같은 상처 자국은 오히려 여자들에게 남자의 면역력이 약하다는 인식을 준다더라. 여자들은 상처가 있는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맹함이 있기 때문에 여성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봐.”

“오~. 언니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우리는 자기 소개를 한 뒤에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어. 특히 저자세 씨가 고등학생 때 미친개를 만난 얘기를 해주는데, 담을 넘어 개를 피한 얘기에 우린 모두 자지러졌어. 그 남자는 키도 크고 운동을 많이 했는지 근육도 엄청 매력적이거든. 그 남자가 뭐라는 줄 알아? ‘이 근육, 사실은 언제든지 빨리 도망갈 수 있게 하려고 키운 거예요. 제가 좀 겁이 많거든요’라고 하는 거 있지.”

“오호~ 휴 그랜트 식의 유머를 구사하는군.”
“휴 그랜트?”

“영화 ‘노팅힐’에서 어수룩하게 나왔던 영국 영화배우 휴 그랜트 몰라? 그 영화에서 자신을 낮추는 식의 농담을 하는데 그게 여자들한테 무척 매력적으로 들리거든. 미국 뉴멕시코대에서 연구한 결과인데 64명의 여학생에게 남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가장 매력적인 남학생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많은 여학생들은 자신을 낮추는 유머를 한 사람을 골랐대. 자신을 낮추는 발언이 지나치면 자칫 이성에게 나약하게 비칠 수 있지만 한편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끔 만든다나 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런 유머를 구사하면 여자들에게 더 잘 통한대. 지난해 6월 ‘진화심리학’에 소개된 결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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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심리를 잘 알면 당신도 ‘연애박사’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영화 ‘작업의 정석’의 한 장면.

“언니~심리학도라고 해서 어느 정도 기대를 했지만 완전 연애박사잖아? 정말 대단하다~.”
“하하~. 그런가. 그래, 다른 한 사람은 어땠니?”
“이 사람도 너무너무 매력적이었어. 언니, 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눈동자가 큰 남자를 본 적이 없어.”

“송승헌보다 더?”
“송승헌은 실제로 내가 본 적이 없잖아. 그리고 평소엔 송승헌도 그다지 눈동자가 크다고 좋아하지 않았어.”
“음. 혹시···. 너 ‘그 날’인가?”
“응? 무···무슨?”

“배란기 말이야. 원래 사람은 탐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으면 자꾸 바라보게 돼. 자세히 보려고 두 눈을 크게 뜬다고 하잖아. 이른바 ‘동공 확대 효과’라고 하거든. 그런데 배란기의 여자는 이런 인간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더 잘 인식한대. 영국 에든버러대 엘리너 스몰우드 박사팀이 연구한 건데, 여성 10명에게 눈동자의 크기를 조작한 남자들의 사진을 보여줬어. 그 결과 참가자들은 눈동자가 큰 사진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단다. 배란기의 여성은 남성의 커진 눈동자를 남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성적관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단 이런 경향은 배란기가 아닌 여성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해.

“아, 그럴 수 있겠다. 날짜상으로 보면 가능해. 우와~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넌 누구를 선택했니?”

“흑, 난 세 사람 다 마음에 들어서 커플을 결정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어. 눈을 감고 원하는 사람을 가리키라는 데, 어찌할 바를 몰라서 눈을 감지 않고 같이 나간 미숙이와 진경이의 선택을 몰래 지켜봤지. 미숙이는 얼굴에 상처 있던 반창고 씨, 진경이는 유머스러운 저자세 씨를 찍더라. 눈동자가 큰 나석흘 씨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별로였나 봐. 그래서 난 연애 경험이 많은 진경이를 따라 저자세 씨를 선택했어.”

“진경이를 따라서 선택했다고?”
“응···. 흑, 그래서 나는 커플이 안 됐어. 저자세 씨도 진경이를 선택했더라구.”

“이런, 초파리의 이론이 딱 들어맞는군. 암컷 초파리는 짝짓기 대상을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할 경우 이미 다른 암컷이 선택한 수컷을 선호하거든. 프랑스 진화유전체종분화 연구소 프레데릭 메리 박사팀이 지난 5월 국제저널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결과야.

실험에서 암컷 초파리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잘 자라지 못한 수컷 초파리가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수컷이 다른 암컷과 짝짓기하는 행위를 보면 구애를 받아들이는 기이한 현상을 보였대. 남들이 선택한 수컷에게는 후대에게 이로운 좋은 정자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 아무래도 임신을 해야 하는 암컷은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안전하고 보장된 상대를 고르는 경향이 있나봐. 이 현상을 ‘배우자 모방 선택’이라고 하고 해.”

“초파리랑 비슷하다니···. 이거 왠지 기분 나빠지는 걸.”
“하하~. 물론 초파리의 경우를 사람에게까지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학자들도 있어. 하지만 물고기나 새와 같은 동물 실험에서는 유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게 사실이야.”
“그렇구나. 아~. 비록 난 커플이 안 됐지만 오늘 멋진 남자들을 만났으니 보람찬 하루였어. 그리고 내가 이 ‘미팅의 제왕’들에게 빠진 게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구나. 고마워 언니.”

  • 김윤미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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