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공법은 ‘폭약’이 아니라 ‘중력’의 힘!

폭파공법은 ‘폭약’이 아니라 ‘중력’의 힘!

주제 지구과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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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광!~ 우르릉!!” “발파 성공!”

지난 4월 18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강원도 영월 화력발전소가 ‘구조물 해체공법’으로 완전 해체됐다. 폭파팀은 화력발전소 1,2호기와 60m 굴뚝에 총 900곳의 구멍을 뚫어 1090개의 다이너마이트(200kg 분량)를 장착했다.

앞쪽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을 위에서 아래로 폭삭 주저앉힌 다음 굴뚝과 8층 건물을 5층 건물이 무너진 곳으로 기울여 쓰러뜨렸다. 건물이 수 초 내에 눈에서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처럼 도시나 지방의 노후화된 대형 건물에 대해 폭약을 통해 해체시키는 구조물 해체공법의 적용이 늘고 있다. 그러나 처음 의도대로 폭파시키기란 쉽지 않다. 영월 화력발전소도 8층 건물 폭파 과정에서 폭약이 터지지 않아 2차 시도를 거쳐 해체에 성공했다. 어떻게 거대한 건물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까?

구조물 해체공법의 핵심은 기둥, 보, 벽 같이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물을 파괴시켜 건물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폭약으로 지지물을 없애면 건물은 불균형 상태가 돼 자체 중력에 의해 넘어지면서 붕괴된다. 즉 ‘폭약’이 아니라 ‘중력’으로 건물을 파괴한다. 실제 예를 들어 과정을 알아보자.

지난 1994년 11월 남산 외인아파트 해체과정은 여러 복잡한 단계를 거쳤다. 우선 건축 당시 설계도를 검토하면서 아파트 건축구조를 파악하고 붕괴 공법을 선정해야 한다.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히는 ‘단층붕괴공법’과 일정한 방향으로 구조물 전체를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전도공법’, 원형경기장처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붕괴시키는 ‘내파공법’ 등 4~5가지 방법이 있다. 남산 외인아파트는 단층붕괴공법으로 해체됐다.

붕괴 공법이 결정되면 주변 시설물의 안전성을 검토해야 한다. 주변 건물이 폭파 때 생기는 땅의 진동을 견뎌야 하고, 소음이 기준 요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공사의 진동 허용치인 초당 0.5cm가 외인아파트 해체에도 적용됐다. 폭파 때 소음은 사람이 소음으로 통증을 느끼는 140데시벨(dB) 이하로 책정됐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분진과 함께 튀어나오는 조각난 돌조각의 안전성도 검토한다. 이런 허용치와 발파공법, 폭약위치 선택 등을 모두 고려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여기서 아무 문제가 없으면 본격적으로 아파트 내장재 제거에 들어간다. 아파트 내의 배관재, 창호재, 천장재, 아스타일, 철재류, 알루미늄 새시, 석면, 유리섬유 등 건물 내부의 폐자재를 모두 뜯어내고 ‘건물 껍데기’만 남긴다.

내장재가 모두 제거되면 건물의 기둥 곳곳에 3~4cm 지름의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한다. 모든 층에 폭약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만 설치한다. 16층인 외인아파트 A동에는 1층, 2층, 6층, 10층, 14층에 폭약을 설치했다. 사전 설계에 의해 2261개의 구멍을 뚫고 총 367kg의 폭약을 넣었다. 폭약의 양은 기둥 두께가 40cm일 때 70~90g, 60cm일 때 140~200g을 쓴다. 폭약은 동시에 터지는 것이 아니라 공법에 따라 순차적으로 터진다. 외인아파트 두개 동을 13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이 0.5초 간격으로 터지도록 전기 뇌관을 설치했다. 폭약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폭파 시차를 잘 조절하면 소음과 진동을 줄일 수 있다.

이어 건물 주변에 방호막을 설치한다. 폭파되는 순간 발생하는 폭풍압이나 날아가는 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본격 발파 전에는 시험 발파로 성공 여부를 점검한다. 이어 버튼을 누르면 건물은 순식간에 파괴된다. 준비는 오래지만 부서지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발파에 성공하면 곧바로 해체물을 잘게 부숴 재활용자재를 반출한다. 남산 아파트는 발파 준비부터 발파까지 40일이 소요됐지만 발파 뒤 해체물을 잘게 부수고 반출하는 데 130일이 소요됐다.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 16층과 17층 2개동은 사라졌고 멋진 남산 전경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처럼 복잡하고도 정교한 구조물 해체공법이 처음 등장한 배경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구조물 해체공법이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계적 방식으로 파괴하면서 철거할 경우 분진과 소음이 장기화된다. 장비 대여와 인건비를 계산하면 5층 이상의 건물은 직접 해체하는 것보다 구조물 해체공법을 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구조물 해체공법이 가장 먼저 실시한 곳은 미국으로, CDI(Controlled Demolition International)가 1947년 구조물 폭파작업에 첫 성공했으며, 이후 영국, 스웨덴, 일본 등 세계로 확산됐다. 최근 중국에서는 연간 약 3000개 노후 건물에 대해 구조물 해체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한화가 서울에 위치한 3층짜리 군 시설을 구조물 해체공법으로 해체시킨 뒤 지난 2004년 말까지 총 40개 건물에 적용됐다. 지난 2005년 우리나라의 구조물 해체 시장 규모는 3억8700만 달러로 미국(2005년 35억8300만 달러), 일본(83억3300만 달러), 영국(12억1300만 달러) 등 선진국에 비해 아직 시장 규모가 작다.

그러나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잠재적 해체대상 건물이 2010년 이후 약 890만호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준 1조5000억원의 구조물 해체시장이 2016년에는 5조8000억원, 2026년에는 11조8000억원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전망이 매우 좋다는 뜻이다.

반면 이 분야의 전문가는 국내에 거의 없다. 현재 국내 건물의 해체는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뤄지고 형편이다. 구조물 해체공법은 건축, 토목은 물론 폭약, 안전공학, 등 다방면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따라서 전문가 한명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힘들고 어려운 분야지만 가능성이 열린 구조물 해체공법에 도전장을 내밀어 볼 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 서현교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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