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

신화 속 인물

[ Horatius ]

요약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귀족 가문이다. 호라티우스 3형제는 로마와 알바롱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로마를 대표하는 용사로 선발되어 알바롱가의 쿠리아티우스 3형제와 나라의 운명을 건 결투를 벌였다. 결투는 호라티우스 형제의 승리로 끝났다.
다리를 지키는 호라티우스 코클레스

다리를 지키는 호라티우스 코클레스

구분 신화 속 인물
상징 애국심
관련 사건, 인물 로마와 알바롱가 전쟁

신화 이야기

호라티우스 형제와 쿠리아티우스 형제의 결투

호라티우스는 초기 로마의 전설적인 귀족 가문 이름이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왕 치세에 로마와 알바롱가 왕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두 나라는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각각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용사들을 선발하여 그들의 결투로 승패를 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대결을 위해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가문의 3형제가 뽑혔고 알바롱가에서는 쿠리아티우스 가문의 3형제가 출전하였다.

이들 여섯 명의 용사들은 나라의 운명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얼마 뒤 쿠리아티우스 3형제는 모두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호라티우스 형제는 두 명이 죽고 푸블리우스 한 명만 살아남아 수적인 열세에 놓이고 말았다. 이에 푸블리우스는 도망치는 척 하면서 부상을 당한 쿠리아티우스 형제를 서로 떨어지게 만든 뒤 한 명씩 상대하여 모두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자크 루이 다비드, 1786년, 톨레도 미술관

사형선고를 받은 호라티우스 푸블리우스

결투에서 승리한 푸블리우스 호라티우스는 쿠리아티우스 3형제의 시신에서 갑옷과 무기를 빼앗아 로마로 돌아오던 중 자신의 누이동생 카밀라와 마주쳤다. 그녀는 로마와 알바롱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쿠리아티우스 형제 중 한 명과 약혼을 한 사이였는데, 오빠들과 약혼자의 안위가 걱정되어 길을 나섰던 참이었다. 카밀라는 오빠가 손에 든 갑옷을 보고는 약혼자가 죽은 것을 알고 슬피 울었다. 그러자 호라티우스는 적의 죽음을 슬퍼하는 로마의 여인은 설령 그것이 자신의 누이더라도 죽어 마땅하다며 칼을 뽑아 카밀라를 찔러 죽였다.

로마의 법정은 누이를 죽인 호라티우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자 호라티우스의 아버지는 로마의 민중들에게 아들이 거둔 승리를 언급하면서 네 명의 자식 중 유일하게 남은 아들을 잃어 가문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아버지의 호소는 로마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호라티우스는 사면을 받았다. 이때부터 로마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무죄나 사면을 호소할 수 있게 되었다.

호라티우스는 그러나 법에 복종하는 표시로 머리를 숙이고 들보 밑을 지나는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또 다른 호라티우스

로마 신화에는 호라티우스라는 이름을 쓰는 인물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 중 유명한 인물은 호라티우스 코클레스(‘애꾸눈 호라티우스’)이다(그는 푸블리우스 호라티우스의 직계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로마와 에트루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로마로 들어오는 통로인 티베리스 강의 다리를 혼자서 지켜낸 영웅이다. 그는 이 전투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 기슭의 불카날에 세워진 절름발이 애꾸눈 상은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가 아니라 호라티우스 코클레스의 상이라고 한다.

참고자료

  • 리비우스, 『로마건국사』
  •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로마사』
  • M. 그랜트, J. 헤이즐, 『』, 범우사
  • 피에르 그리말, 『』, 열린책들
  • W. H. Roscher, 『Ausführliches Lexikon der griechischen und römischen Myth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