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준
[ 金東俊 ]
김동준(金東俊, 1928-1990)은 전남 화순군 북면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고수이다. 어린 시절 장판개(張判盖, 1885-1937)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국악에 입문했다. 13세(1940)부터 박동실(朴東實, 1897-1968)에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전수받았다. 이후 전주에서 박봉술(朴鳳述, 1922-1989)에게 〈적벽가〉를 익혔다. 판소리 고법은 소리판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으로, 장판개와 김연수(金演洙, 1907-1974), 박창을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동준 『동아일보』. 1991.8.16
25세에 김연수의 우리국악단에 입단해 창극 공연을 했으며, 28세부터 6년간 전주의 전동국악원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제자를 양성했다. 33세에 상경해 국악원을 잠시 운영했으며, 35세에 국립창극단에 전속 고수로 입단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소리꾼이 아닌 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40대에 김연수 문하에서 〈춘향가〉를 이수했으나, 이때 오히려 고수로서의 기능을 인정받아 명고수로 이름을 얻었다. 1980년대에 김명환(金命煥, 1913-1989)·김득수(金得洙, 1917-1990)와 함께 '명고수 3인방'으로 불렸으며, 완창 판소리 공연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판소리 여성 명창 박록주(朴綠珠, 1909-1979)의 지정고수로도 이름이 높았다. 한편 그가 30대에 녹음한 박봉술 바디 〈적벽가〉 음반이 1999년에 발매된 바 있다. 소리꾼으로 활동하던 시절, 남원의 강도근(姜道根, 1918-1996), 순천의 박봉술(朴鳳述, 1922-1989), 군산의 이기권(李起權), 광주의 한승호(韓承鎬, 1924-2010)와 더불어 호남의 5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는 음악적 재질은 뛰어났지만 타고난 목이 좋지 않아 고수로 전업했다. 그러나 소리꾼 출신의 고수였던 만큼 소리의 내용을 잘 알았고, 빈틈없이 치밀한 고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또 그는 특정 유파의 소리에 국한하지 않고 거의 모든 소리제의 북에 두루 능하기로 유명했다. 채편을 이용한 소위 '따드락'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정박을 고수했으며, '좋다', '얼씨구', '잘한다'와 같은 간결한 추임새로 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참고문헌
- 김동준, 『적벽가 전집』 1-2, 신나라 뮤직, 1999.
- 이보형,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 : 판소리 流派』,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 최동현, 「명고수가 된 명창-김동준론」, 『판소리명창과 고수연구』, 신아출판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