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
판소리에서 고수나 청중이 소리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곁들이는 조흥사(助興詞) 및 감탄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추임새라는 말은 '위로 끌어 올리다' 또는 '실제보다 높여 칭찬하다'라는 뜻의 '추어주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씨구", "얼씨구야", "얼쑤", "으이", "허이", "허", "좋다", "아먼", "잘한다", "그러지" 등이 그 예이다. 판소리 외에 민요, 잡가, 무가 등 다른 성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추임새는 이러이러한 위치에 넣어야 한다는 규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 도중에 아무 곳에서나 추임새를 남발하는 것은 곤란하다. 창자가 곡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적절한 곳에서 추임새로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판소리 사설의 내용 혹은 소리판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추임새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리가 슬플 때는 추임새도 이에 맞춰 슬픈 어조로, 즐거운 대목에서는 힘차고 흥겨운 어조로 추임새를 해야 한다. 추임새도 어느 부분에 강세를 주고, 어떤 어조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창자와 청중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과 교감이 판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열린 예술'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판소리에서는 청중들이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의 내용을 추임새라는 수단을 통해 밖으로 표출하고, 이것이 창자는 물론 소리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추임새 자체가 소리판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과 교감의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청중의 추임새는 판소리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청중들은 판소리로부터 전달되는 의미에 대한 감동, 판소리의 이야기 전개에 대한 공감과 합의를 추임새로 표현한다. 〈심청가〉 중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감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며, 〈춘향가〉 중 이도령이 어사 출두하여 변학도를 징치하고 춘향을 살려내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에 대한 공감과 합의의 표현이다. 또 청중들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저항과 화해의 의미를 추임새에 담기도 한다. 〈흥보가〉에서 놀보와 놀보 처가 곡식을 얻으러 온 동생 흥보를 마구 때리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가 전자에, 결국 과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 놀보에게 보내는 추임새가 후자에 해당한다. 한편 청중들은 어떤 대목을 노래하는 창자의 성음이나 소리가 매우 뛰어나 순간적으로 심미적 황홀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에도 추임새를 한다.
서양의 사실주의 연극에는 이른바 '열쇠 구멍의 원리', '제4의 벽의 원리'가 존재한다. 무대와 객석은 표면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배우는 무대에서 그들끼리 대화하고 행동한다. 이때 관객은 열쇠 구멍을 통해 몰래 남의 방을 들여다보듯이, 혹은 투명하다고 가정된 '제4의 벽'을 통해 몰래 남의 방을 들여다보듯이 숨 죽여 연극을 본다. 배우와 관객 모두 긴장한 상태에서 배우는 모르는 척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고, 관객은 이에 반응한다. 이러한 반응은 관객들 사이에 전이되어 퍼져 나가고, 무대 위의 배우에게까지 전달된다. 그러면 배우 또한 이에 반응하면서 관객들의 새로운 반응을 계속 유도한다. 그러나 판소리는 창자와 청중이 직접 상대하는 연희로, '제4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판소리에서 창자와 청중은 추임새를 통해 바로 만난다. 창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빈 공간을 만들고, 청중은 다양한 추임새로 그 빈 공간을 메운다. 이는 창자와 청중 간의 우호적인 대결이며, 이 대결을 중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가 고수이다. 창자-고수-청중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신명나는 소리판이 완성되는 것이다.
판소리에서는 청중의 추임새는 물론 고수의 추임새도 매우 중요하다. 고수는 소리판에서 청중들의 추임새를 받아 대변하거나, 청중들의 추임새를 유도하여 소리판을 활기차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추임새로 창자를 격려하고 고무하여, 그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고수의 몫이다. 고수는 추임새로 창자의 흥을 돋우어 더 나은 소리를 할 수 있도록 하며, 사설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추임새 성음의 강약을 조절하여 소리의 강약을 보좌한다. 창자가 숨을 쉬는 휴지(休止) 부분이 나오면 북가락이나 추임새로 가락과 가락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서 소리가 밋밋하게 되지 않도록 한다. 고수의 추임새는 북가락이나 상대역의 대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북소리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추임새로 북을 대신하며, 창자가 아니리를 할 때 상대역이 되어 "얼씨구"와 같은 짤막한 추임새로 그에 응답한다.
참고문헌
- 전신재, 「판소리 공연학 총론」, 『공연문화연구』 23, 한국공연문화학회, 2011.
- 최동현, 『판소리란 무엇인가』, 에디터,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