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독
[ 郭禿 ]
곽독(郭禿)은 인형을 가리키는 말로서 괴뢰(傀儡)의 별칭이다. 한국 인형극 연구의 초창기에 꼭두각시놀이가 인도에서 서역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었고, 한국을 통해 그것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제기된 후 여러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꼭또' 또는 '꼭두'라는 말이 중국의 인형을 가리키는 말인 '곽독(郭禿)'에서 왔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구쓰(クグツ)'로 되었다고 하는 데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되어 왔다.
북제인(北齊人) 안지추(顔之推, 531-590)의 『안씨가훈(顔氏家訓)』 서증(書證) 제17편에서는 한말(漢末)에 응소(應劭)가 편찬한 『풍속통(風俗通)』을 인용하여, 곽독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풍속통』에서 이르기를, 곽(郭)씨 성의 사람들은 모두 독(禿)자를 꺼려했다. 전대에 머리가 벗겨지는 병에 걸린 곽씨가 있었는데, 골계희로 웃기기를 잘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본따서 괴뢰(傀儡)를 만들고, 그것을 곽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곽랑(郭郞)은 곽독의 별칭이다. 한나라 고조가 평성(平城)에서 묵특선우(冒頓單于)에게 포위당했을 때, 성 안에 남아 있는 양식이 없었다. 평성의 한 면은 묵특의 처 연지(閼氏)가 맡고 있었는데, 병력이 다른 세 면보다 강했다. 한 고조의 장수 진평(陳平)은 연지가 투기심이 세다는 것을 알고, 곧 나무인형을 만들어 기계 작동으로 성 위 담의 사이에서 춤을 추게 했다. 연지는 이것을 보고 살아 있는 아가씨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성이 함락되면 묵특이 반드시 그들을 기녀로 맞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군대를 후퇴시켰다. 뒤에 악가(樂家)들이 이를 연희로 만들었는데, 그 중 가무를 인도하는 머리가 벗겨진 자는 골계희로 웃기기를 잘했다. 민간에서는 그 자를 곽랑이라 불렀는데, 모든 희장(戱場)에서 반드시 배우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다음 두 인용문은 곽독과 곽랑이 동일어라는 사실을 밝혀 준다.
곽(郭)씨 성의 사람들은 모두 독(禿)자를 꺼려했다. 전대에 머리가 벗겨지는 병에 걸린 곽씨가 있었는데, 골계희로 웃기기를 잘 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본따서 괴뢰를 만들고, 그것을 곽독이라고 불렀다.
응소(應劭), 『풍속통』······ 뒤에 악가(樂家)들이 이를 인형놀이로 만들었는데, 그 중 가무를 인도하는 곽랑이란 자는 머리가 벗겨지고 골계희로 웃기기를 잘했다. 민간에서는 그 자를 곽랑이라 불렀는데, 모든 희장에서 반드시 배우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단안절(段安節), 『악부잡록(樂府雜錄)』두 인용문은 중국의 인형(괴뢰)을 곽독과 곽랑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은 서로 동일하다. 그러므로 곽독과 곽랑은 중국 인형극의 인형(괴뢰)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또 북제(北齊) 후주(後主) 고위(高緯)가 괴뢰를 좋아하여 그 인형을 곽공(郭公)이라고 불렀다.
참고문헌
- 김재철, 『조선연극사』, 학예사, 1939.
- 김학주, 『중국 고대의 가무희』, 민음사, 1994.
- 서연호, 『꼭두각시놀음의 역사』, 연극과 인간, 2000.
-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 유민영, 「한국인형극의 유래」, 『예술논문집』 14, 예술원, 1975.
- 이두현, 『한국 가면극』, 문화재 관리국, 1969.
-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학고재, 2004.
참조어
곽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