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김칫국부터 마신다
김치는 우리 식단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채소를 오래 보관해 두고 먹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그러기에 김장을 담그는 것은 장 담그는 것과 함께 사람의 집에 일년지대계(一年之大計)에 속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우리의 김치가 오늘날 세계적인 건강식품이 되었다.
‘김치’는 본래 이의 어원 ‘침채(沈菜)’가 말해 주듯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우린 것으로, 오늘날과 같은 발효식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자어 ‘저(菹)’로 나타내지듯 ‘소금절이 채소’였다.
‘김치’는 ‘침채’에서 비롯된 말이나 중국어가 아니다. 이는 한자를 빌린 우리말이다. 이것이 ‘딤’ 또는 ‘팀’로 변하고, 다시 ‘짐’, ‘짐츼’를 거쳐 ‘김츼’가 되고, 오늘의 ‘김치’가 된 것이다. 김치를 가리키는 말에는 이 밖에 ‘디히’가 있다. 이는 ‘딯다(落)’에서 파생된 말로, ‘지이’를 거쳐 ‘지’가 되었다. ‘디히’도 『두시언해』에 ‘겨 디히(冬菹)’라 보이듯, ‘담근 채소, 소금 절이 채소’를 의미한다.
‘지’는 경상방언에서 김치를 가리키나, 이는 오히려 ‘짠지’, 또는 ‘장아찌’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짠지’는 ‘짠-디히’가 변한 말로, 표준어로는 ‘무를 통째로 소금에 짜게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가리킨다. ‘장아찌’는 ‘장앳디히(醬瓜兒)’가 변한 말로, ‘장에 둔 지’, 곧 ‘장지(醬漬)’를 의미한다. 그런데 충청방언 등에서는 ‘짠지’가 ‘김치’에 대가 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동침이 나박김치 같은 물김치는 ‘김치’라 하고, 국물이 없는 ‘배추김치’는 ‘짠지’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로 보면 우리의 ‘김치’문화는 ‘침채’문화만이 아닌, ‘디히’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치’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우선 재료가 가지가지고, 담그는 방법이 다양하다. ‘갓김치, 고수김치, 나박김치, 돌나물김치, 동아김치, 무김치, 무순김치, 박김치, 배추김치, 부들김치, 부추김치, 얼갈이김치, 열무김치, 오이김치, 중갈이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풋김치, 한련김치’는 재료에 따른 이름이다.
이 가운데, ‘고수김치’는 고수풀(胡荽)을, ‘동아김치’는 동과(冬瓜)를, ‘부들김치’는 부들(香蒲)을, ‘얼갈이김치’는 겨울에 심는 푸성귀(凍播)를, ‘중갈이김치’는 철 아닌 때에 가꾼 채소(中播)를, ‘한련김치’는 국화과의 한련(旱蓮)을 재료로 한 것으로 조금은 낯선 것이다. ‘나박김치’는 ‘나박나박’ 썬 김치라는 말이 아니고, ‘나박’이 무를 의미하는 중국어 ‘나복(蘿葍)’으로, ‘무김치’란 말이다. 총각김치는 굵기가 손가락만한 어린 무를 무청째 여러 가지 양념을 하여 버무려 담근 김치를 말한다. 이는 어린 무를 총각에 비유하여 다소 야하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국물김치, 굴김치, 꿩김치, 닭김치, 둥둥이김치, 보쌈김치, 벼락김치, 비늘김치, 소박이김치, 숙김치, 싱건김치, 오이소박이김치, 장김치, 짜개김치, 쪽김치, 초김치, 통김치, 홀아비김치’는 담그는 방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굴김치, 꿩김치, 닭김치, 장김치, 초김치’는 물론 재료와도 관련된다. 그러나 방법과 좀 더 관련이 깊다 할 것이다. ‘꿩김치’와 ‘닭김치’는 꿩과 닭으로 김치를 담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리라 할 음식이다. ‘꿩김치’는 꿩을 삶은 물과 동치미 국물을 똑같이 타고, 삶은 꿩고기를 넣은 음식이다. 한자어로는 치저(雉菹)라 한다. 이는 ‘김칫소에 꿩고기를 넣고 담근 김치’라고 풀이한 사전도 있다.
이에 대해 ‘닭김치’는 닭 내장을 빼고 그 안에 쇠고기와 버섯, 두부를 양념하여 넣고 삶아 낸 다음, 속에 든 것을 헤뜨려 햇김치국을 섞은 닭 국물에 넣어 얼음을 띄운 음식, 계저(鷄菹)를 가리킨다. ‘장김치’는 소금 대신 간장으로 절여 담근 김치다. 장저(醬菹)가 그것이다.
이 밖에 ‘둥둥이김치’는 국물이 많아서 건더기가 둥둥 뜨게 담근 김치이고, ‘벼락김치’는 무나 배추를 간장에 절여 당장 먹게 벼락치기로 만든 김치다. ‘겉절이’같은 것이라 하겠다. ‘비늘김치’는 오이소박이김치처럼 오이의 허리를 네 갈래로 내는 것이 아니라, 통무를 비늘같이 저미어 그 틈에 소를 넣어서 통배추와 함께 담근 김치를 말한다.
‘숙김치’는 ‘익은 김치’가 아니다. 이는 노인이 먹을 수 있게 무를 삶아서 담근 색다른 김치다. ‘싱건김치’는 김장 때 삼삼하게 담근 무김치로 ‘싱건지’라고도 하는 것이다. ‘짜개김치’는 오이를 알맞게 썰어 소를 박지 않은 김치이고, ‘쪽김치’는 조각조각 썰어서 담근 김치다. ‘홀아비김치’는 무나 배추 한 가지만으로 담근 김치라 하여 익살스런 이름이 붙은 김치다. 총각김치도 일종의 홀아비김치다.
이 밖에 ‘김치’와 관계가 있는 색다른 문화어로는 ‘김치말이, 김치밥, 김치움, 김칫소’ 같은 것이 있다. ‘김치말이’는 김칫국에 만 음식을 통칭하는 말이다. ‘김치밥’은 김치를 잘게 썰어 쌀 밑에 두고 지은 밥이다. 이는 양념한 생굴을 섞어 가며 먹는다. ‘김치움’은 김장독을 넣어 두는 움(穴)이고, ‘김칫소’는 김치를 담글 때 파 · 무채 · 젓갈 따위 고명을 고춧가루에 버무려 절인 배추나 무에 넣는 소를 가리킨다. ‘오이소박이’의 ‘소’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남들이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많은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다. 김치는 물론 주식에 대한 부식으로, 반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전채요, 후식으로도 그 몫을 잘 해 낸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은 김치의 전채 구실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그리고 느끼한 것을 먹고 입이 텁텁하거나, 속이 메스꺼울 때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 김치는 속을 개운하게 해 준다. 이는 후식으로서의 기능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대동야승(大東野乘)』의 소화 한 토막-
강씨 대상(大相)이 매일 밤 부인 몰래 계집종의 처소를 찾았다. 하루는 공이 옷을 벗고 나가기에 부인이 뒤따라 가 보니 계집종의 방으로 들어갔다. 계집종이 “절병(節餠) 같은 부인은 어디 두고 더러운 종을 찾습니까?”하며 나무랐다. 이에 공이 “너로 나도냉이 김치(山芥沈菜)를 담그면 어떻겠느냐?”하였다. 이에 공은 쫓겨났고, 돌계단에 앉았다가 얼어 배탈이 났다.
떡과 김칫국, 떼어놓을 수 없는 궁합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화근이 되기도 한다. 떡 줄 놈을 생각지 않고, 김칫국부터 마셔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