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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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한 겨울밤의 “겨울콩강정”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의 잘 알려진 시 「서풍부(西風賦)」에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란 구절이 있다. 이제 우리 주변에도 음울하던 겨울이 가고, 봄이 문 앞에 다가왔다. 따스한 희망의 봄을 맞으며, 떠나가는 겨울을 좀 되돌아보기로 한다.

‘겨울’의 이미지는 양(洋)의 동서를 가릴 것 없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서양에서는 흔히 노령, 퇴행을 의미하는 죽음, 잠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동양에서는 ‘잎의 시듦’을 나타내는 것이 주가 되는 것 같다. 우리말의 ‘겨울나무’와 일본어 ‘후유키(冬木)’가 그런 것이다. 이는 겨울이 되어 잎이 시들어 떨어져서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자어 동목(冬木)이 그것이며, 나목(裸木)이 이러한 이미지를 상징한다. 이병주(李炳周)의 『지리산』에는 이러한 장면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겨울산의 나목이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남쪽 담벼락을 끼고 몇 그루의 나목이 앙상한 가지들을 뻗고 있었고, 동쪽 담을 끼곤 사철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일본어 ‘후유키(冬木)’의 경우는 나목만이 아니고, ‘상록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지리산의 ‘겨울나무’는 언어의 의미와 조화도 보인다. ‘사철나무’는 우리의 경우 월동하는 나무, 곧 ‘겨우살이나무’라고도 하여 일본어의 은유적 표현 ‘후유키(冬木)’와 달리 기술적(記述的) 명명도 하고 있다. 또한 일본어의 경우는 ‘후유가레(冬枯れ)’라고 하여 겨울이 되어 초목이 마르거나, 그 쓸쓸한 경치를 이르는 말이 따로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해도 우리의 겨울의 대표적 이미지는 ‘고난’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독일어의 ‘겨울나그네(Winterweise)’나, 일본어의 ‘후유게쇼(冬化粧)’와 같은 말을 보여 주지 않는다. ‘겨울나그네’는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낭만파 가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이다. 우리는 이 ‘겨울나그네’에서 ‘고난’보다는 쓸쓸한 나그네의 낭만적 아름다움을 머리에 그리게 된다.

‘후유게쇼’는 직역할 때 ‘겨울 화장’이란 말로, 눈이 내려 겨울다운 정감이 더함을 뜻한다. 확실히 겨울은 ‘눈’이 있어 죽음이나 고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설경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고, 낭만에 젖게 한다. 그러기에 수필가 김진섭(金晉燮)도 그의 『백설부(白雪賦)』에서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라고 눈을 찬탄하고 있다.

‘겨우살이, 겨우살이덩굴, 겨울나기, 겨울눈, 겨울잠’은 겨울의 고난과 관계가 있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사계가 있어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어 좋기도 하나, 추운 삼동(三冬)이 있어 그만큼 인생이 힘들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겨우살이’는 ‘겨울(冬)-살이(生活)’가 변한 말로, 이는 월동(越冬)이란 뜻 외에, 겨울 동안 먹고 입고 지낼 옷가지나 양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이 겨우살이를 위해 온돌을 개발하였고, 김장이란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 저장법을 개발하였다. ‘김장’이란 ‘침장(沈藏)’이 변한 말이며, 김장의 대표라 할, 세계적 음식 ‘김치’는 ‘침채(沈菜)’가 변한 말이다. 이는 ‘딤imagefont > 짐채 > 김치’로 변해 오늘에 이르렀다. ‘겨울나기’도 ‘겨울을 지나기’란 말로 월동을 의미하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겨울나이’라고도 한다.

‘겨우살이덩굴’은 겨우살잇과에 속하는 식물로, 인동(忍冬) 또는 인동(忍冬)덩굴을 의미한다. 월동 덩굴식물이란 말이며, 인동 곧 겨울을 참고 견뎌내는 식물이란 말이다. 한때 한 전직 대통령이 ‘인동초(忍冬草)’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이 인동덩굴의 뻗어 가는 형상을 도안한 무늬, 곧 인동문(忍冬紋)은 우리의 건축, 공예의 장식에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는 많이 쓰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리스, 로마,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된 것이다.

‘겨울눈’은 ‘동설(冬雪)’ 아닌,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생겨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자라는 싹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여름에 자라는 ‘여름눈’의 대가 되는 말이다. ‘겨울의 눈(冬雪)’을 이르는 말은 따로 없다. 눈은 당연히 겨울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겨울이란 계절과 합성하여 단어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설’이란 말도 따로 없다. 그 대신 ‘봄눈’이나, ‘춘설(春雪)’이란 말은 따로 있다. 특성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어서일 것이다.

‘겨울잠’은 동면(冬眠)으로, 파충류 등의 동물이 생활하기 어려운 겨울 활동을 멈추고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땅속이나 물 속에서 수면 상태로 있는 현상을 말한다. 고난의 시기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밖에 우리 문화와 직접 관련을 갖는 대표적인 말로 ‘겨울냉면, 겨울콩강정’이란 말이 있다. ‘겨울냉면’은 ‘여름냉면’에 대가 될 법한 말이나, ‘여름냉면’이란 말은 따로 없다. 그만큼 ‘겨울냉면’은 우리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말이다. 원래 냉면은 여름보다 겨울, 긴 겨울밤에 간식으로 먹는 것이라 한다. ‘겨울냉면’은 이러한, 겨울철에 동치밋국에 말아먹는 냉면을 이른다.

‘겨울콩강정’은 불에 볶은 콩강정의 한가지이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겨울에 콩을 물에 흠씬 불려 한데에서 얼린다. 그리고 잘게 썬 볏짚과 함께 약한 불로 거뭇하도록 볶는다. 그 뒤 콩만 골라서 꿀에 버무리어, 계피 가루 또는 볶은 콩가루나 깨 · 잣가루를 묻혀 강정을 만든다. 별반 간식거리가 없던 지난날, 출출한 겨울밤에 이 강정은 좋은 먹을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를 거의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사라진 전통 음식문화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