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을

가을바람은 총각 바람, 봄바람은 처녀 바람

가을이 왔다. C. 로제티(Rossetti)는 그의 「사계(Seasons)」에서 가을을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다.

가을이 오면 매일 황량해지고
이 해는 조락(凋落)한다.
황금빛 수확의 다발(束)보다
바람과 낙엽에 마음이 쓰인다.

다감한 시인이라 가을의 성숙이나, 수확보다 오히려 가을의 조락과 감상을 노래하고 있다. 가을은 확실히 감상의 계절이다.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떠나간 옛님을 더욱 그리게도 한다.

‘가을’은 ‘성숙, 난숙, 수확, 초로(初老), 황량(荒凉)’ 등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서양에서는 이 ‘가을’이 포도송이나, 과실 바구니를 안고 있는 여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토끼(hare)를 상징하고, 동양에서는 단풍, 특히 국화꽃을 상징한다.

우리말에 ‘가을’이란 말은 물론 한 해의 네 계절 가운데 셋째 계절이다. 한자말로 ‘금추(金秋)’라 하기도 한다. 중국어로는 ‘qiutian(秋天)’, ‘qiuji(秋季)’라 한다.

그런데 우리말 ‘가을’은 의미가 바뀌어 색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들임. 또는 그런 일’을 나타내는 것이다. 곧 ‘가을’이 ‘추수(秋收)’를 의미한다. 이는 가을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농사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길러,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수를 하는 것을 ‘가을하다’라 한다.

농촌에서 가을할 때는 바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는 “가을 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는 말까지 있다. ‘가을’이 추수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영어에도 보인다. 영어 ‘Autumn’이 ‘① 가을, ② 성숙기, 조락기(凋落期), (인생의)초로기(初老期), ③ 가을의 수확’을 의미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와 발상이 같다. 그리고 여기 덧붙일 것은 ‘여름(夏)’을 의미하는 우리의 옛말 ‘녀름/녀imagefont’이 농사와 직접 연결된다는 것이다 ‘녀름짓다’가 ‘농사하다/농사짓다’란 말이요, ‘녀름/녀imagefontimagefont’, ‘녀름/녀imagefont지이’가 ‘농사짓기’, ‘녀름지imagefont리/녀름지으리’가 농부를 의미하는 것이 그것이다. ‘녀름 됴타’는 한걸음 더 나아가 ‘풍년되다’를 의미하기까지 한다. ‘녀름됴imagefont 풍(豊)’(『훈몽자회(訓蒙字會)』)이 그 예이다. 이렇게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한민족의 계절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가을마당, 가을일, 볏가을’ 같은 말도 ‘추수’와 관련된 말이다. ‘가을마당’은 ‘추수를 하는 마당’, ‘가을일’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 그리고 ‘볏가을’은 ‘벼를 거두어 타작하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을줄이’는 ‘가을이 되어 예상보다 수확량이 줄어드는 일’을 뜻한다. ‘가을내림’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추락(秋落)’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키오치(秋落)’라 한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일본에서는 ‘아키다카(秋高)’라 한다. 우리 사전에는 이에 해당한 말이 실려 있지 않다.

‘가을하다’는 일상생활 가운데 그리 흔히 쓰이는 말은 못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많이 쓰이는 말은 ‘가을걷이하다’이다. 이는 ‘가을걷이’에서 파생된 동사로, ‘가을걷이’란 ‘가을(秋)-걷이(收)’, 곧 ‘추수’를 의미하는 명사이다. ‘가을걷이하다’는 황석영의 『장길산(張吉山)』에 다소 외설적인 용례가 보인다.

“까짓거 흔 계집이라, 애 하나만 낳아 달라는데, 가을걷이 끝난 뒤에 무우밭이나 진배없겠지. 뭐 흠이 가나 자리가 나나. 응낙을 했수.”

‘가을걷이’에 해당한 말은 일본어에도 있다. ‘아키오사메(秋收め)’가 그것이다.

‘가을바람’은 물론 가을에 부는 신선하고 서늘한 바람이다. 그런데 이는 흔히 봄철에 부는 따뜻한 바람을 의미하는 ‘봄바람’과 대조적으로 쓰인다. “가을바람은 총각 바람, 봄바람은 처녀 바람”이란 속담의 ‘가을바람’이 이러한 것이다. 가을에는 남자가 바람이 나기 쉽고, 봄에는 여자가 바람이 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남비추 여희춘(男悲秋 女喜春)’이라고, 가을에는 남자가, 봄에는 여자가 더 다감해짐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대조적인 말의 문화적 차이는 ‘가을볕’에도 보인다.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선선한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살갗이 잘 타는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는 것이니, 딸과 며느리에 대한 현격한 애정의 차이를 엿보게 한다.

“가을 아욱국은 계집 내쫓고 먹는다”는 우리 음식문화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속담으로, 가을 아욱국은 귀하고 맛이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일본 속담은 “가을 가지는 며느리를 먹이지 말라”고 한다. 아욱이 가지로, 계집이 며느리로 바뀌었다. 이는 며느리가 미워서 맛이 있는 가지를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 며느리를 미워하는 심정은 우리나 일본이나 같은 모양이다. 일본의 이 속담은 가을 가지의 씨가 많지 않은 데서 자손을 못 볼까 하여 먹이지 말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 덧붙일 것은 ‘가을 하늘’의 상징성이다. ‘가을 하늘’이 우리는 맑은 하늘 ‘청전(晴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아키노 소라(秋の空)’가 변하기 쉬운 날씨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여자의 마음과 가을 하늘”이란 속담까지 있다. 여자의 마음이 가을 날씨처럼 변하기 쉽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 ‘가을 하늘 같은 여인의 마음’이라고 하게 되면 한국 여성은 미소를 짓고, 일본 여인은 눈을 흘길 것이다. 이러한 것이 언어문화(言語文化)의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