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고기

중이 고기 맛을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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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는 익살스럽게도 육식을 금하고 있는 중과 ‘고기’를 관련시킨 것이 여럿 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거나,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법당에 파리가 안 남는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법당에 오른다.”, “중이 고기 맛을 안다고 촌에 내려가 외양간 널판자를 핥는다.”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금지된 쾌락을 뒤늦게 맛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속담들이다.

그러나 사실은 육식을 하는 스님도 있다. 중국 소림사(少林寺)의 스님들이다. 소림사의 선승들은 당(唐)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정권 잡는 것을 도와, 태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저들에게 무술 연마에 정력이 필요하니 육식을 해도 좋다는 특별한 교서를 내린 것이다.

우리말에서 ‘고기’는 짐승의 고기와 물고기를 아울러 이른다. 이는 단어의 구조로 보아 ‘고기’는 본래 짐승의 고기를 의미했고, 어류는 뒤에 비유적으로 이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류를 ‘물고기’라고, ‘고기’를 ‘물’이 꾸미고 있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는 물론 뭍의 짐승의 고기에 대해 물 속에 사는 어류의 살을 의미하고, 나아가 그 어류 자체를 의미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어류’를 ‘고기’라 이르는 것은 우리말만의 특징이다.

다른 나라말은 오히려 ‘고기’가 ‘과실 따위의 살’을 의미한다. 일본어 ‘니쿠(肉)’가 그렇고, 중국어 ‘rou(肉)’, 영어의 ‘meat’가 그러하다. 이밖에 한자 ‘肉’은 ‘육욕(肉慾), 육감(肉感), 육교(肉交), 육정(肉情)’과 같이 ‘성(性)’과 관련된다. 그러나 우리말의 ‘고기’는 이런 의미는 갖지 않는다.

‘고기’는 식용의 동물의 살을 의미한다. ‘고기’와 합성어를 이루는 육류로는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푿소고기, 개고기’가 있다. ‘푿소고기’는 여름에 생풀만 먹고사는 소의 고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맛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의 요리와 관련된 말로는, ‘고기구이, 고기만두, 고기볶음, 고기소, 고기쌈, 고기저냐, 고기전골, 고기젓, 고깃가루, 고깃국, 불고기, 방자고기’ 같은 것이 있다.

‘고기구이’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석쇠 같은 것에 구운 음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국이나 찜과 대조되는 대표적 요리의 하나이다. ‘구이’에는 한국 요리를 대표하는 ‘불고기’가 있다. ‘불고기’는 쇠고기 등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하여 재었다가 불에 구운 것이다.

요사이 시중에서 팔고 있는 ‘불고기’는 이 요리의 절차가 많이 간소화된 것이다. 그리고 ‘불고기’라는 말도 ‘(고기)구이’라는 말에 비해 속된 말로, 새로 생겨난 것이다. ‘쇠고기 구이, 갈비구이’라면 점잖을 것을 ‘불고기, 불갈비’라고 하여 불에 탄 고기를 씹듯, 입맛이 좋지 않다. 더구나 전통적으로는 소위 ‘불갈비’도 ‘불갈비’라 하지 않고, ‘가리구이’라 했다.

‘갈비’는 동물의 늑골을, ‘가리’는 식용 ‘갈비’를 뜻해 구별했던 것이다. 이는 “날고기보고 침 안 뱉는 이 없고, 익은 고기 보고 침 안 삼키는 이 없다”고 비위에 거슬리는 시뻘건 갈비의 인상을 피하고자 구별한 선인들의 지혜이다.(저미어 양념하여 구운 고기는 따로 ‘너비아니’라 한다.)

‘고기쌈’은 잊힌 음식, 잊힌 말이 되었다. 이는 얇게 저며 편 쇠고기에 밥과 처녑을 곁들여 먹는 쌈을 이른다. 한자말로는 육포(肉包)라 한다.

‘고기저냐’는 쇠고기로 만든 저냐다. 저냐란 생선이나 고기를 얇게 저며 둥글 납작하게 만든 다음,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기름에 지진 음식이다. 이는 오늘날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고기젓’도 마찬가지다. 이는 고기로 담근 젓을 가리켜 상상의 도(度)를 넘게 되었다. ‘방자고기’도 색다른 음식이다. 이는 씻지도 않고 양념도 하지 않은 채로 소금만 뿌려 구운 짐승의 고기다. 담백한 고기 천연의 맛을 찾은 것일까?

고기의 종류를 나타내는 말에도 생소한 것이 있다. ‘맷고기, 고삿고기, 궂은고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맷고기’는 가난한 서민들과 친숙할 고기다. 이는 고기를 짝으로 사 가는 부자들과는 달리 ‘조금씩 떼어놓고 푼어치로 파는 쇠고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사이는 단군이래 가장 풍요한 때라고 빈부 격차 없이 쇠고기를 즐겨 먹지만, 지난날에는 명절이 돼도 쇠고기 한 칼 구경하기가 힘든 것이 서민들의 생활이었다. 그러기에 「농가월령가」에도 보면, 근친(覲親)갈 때도 개고기를 싸 가지고 갔다.

‘고삿고기’는 여러 사람의 허물을 혼자 뒤집어쓰고 희생되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본래 고사(告祀)지낼 때 제물로 쓰는 고기가 이렇게 비유적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궂은고기’는 병 따위로 죽은 짐승의 고기를 가리킨다. 지난날에는 고기가 귀하던 때라 병사(病死)한 짐승의 고기도 몹쓸 역질(疫疾)이 아니면 대체로 나누어 먹었다.

이밖의 ‘고기깃, 고기밥, 고기비늘연’은 짐승의 고기 아닌, 물고기와 관련된 말들이다. ‘고기깃’은 물고기가 모여들도록 물 속에 넣어 두는 나뭇가지나 풀포기를 말한다. 이는 ‘고기(魚)-깃(巢)’으로, 고기의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기밥’은 물고기에 주는 밥, 미끼를 가리킨다. 그래서 ‘고기밥이 되다’란 관용어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단오절은 고기밥의 의미를 실감나게 설명해 준다. 그것은 이날이 춘추시대의 굴원(屈原)이 멱라수에 빠져 죽은 날이라, 그를 위해 종자(粽子)란 떡을 해 먹기 때문이다. 종자는 물에 빠져 죽은 굴원이 문자 그대로 ‘고기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댓잎에 밥을 싸 ‘고기밥’으로, 강에 던진 고사에 연유한다. ‘고기비늘연’은 연(鳶)의 일종으로, 전면에 고기비늘 모양을 먹으로 그리거나, 색종이로 오려 붙인 연이다. 전통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말이다.

한민족은 유목생활을 통해 가축을 길렀고, 이를 식용하였다. 그러나 불교가 들어와 살생을 금하며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몽골의 영향을 받으며 다시 육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식습관은 조선조의 유교문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