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총

호우총

[ 慶州 壺杅塚 ]

지역 경주
호우총 평면도 및 입면도

호우총 평면도 및 입면도

호우총은 경주 노서동(路西洞) 제140호분으로 1946년 해방직후 우리 손에 의하여 발굴된 최초의 고분이다. 당시 국립박물관에서는 이 고분의 발굴을 위하여 일본인 학자 有光敎一의 자문을 받았다. 호우총이라는 고분명칭은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 기년명(紀年銘)이 있는 고구려산의 청동호우 1점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합은 높이 19.4㎝에 뚜껑이 있는 그릇으로, 그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16자의 명문과 #자형 표시가 양주(陽鑄)되어 있었다.

이 명문은 이 고분의 상한연대를 알려주는 절대연대자료가 될 뿐 아니라, 신라고분에서 광개토왕의 이름이 명시된 고구려제품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대외관계등의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이 많아서 주목되었다. 부장품 중에는 화살통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칠제방상씨가면(漆製方相氏假面)도 있었는데 당시 풍속의 일부나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분에 고구려에서 제작된 왕릉제기(王陵祭器)가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부장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봉총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고구려의 수많은 공예품들이 신라에 입수된 것은 사실이며, 이 청동합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라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 356~405)의 아들 복호(卜好)가 광개토대왕의 치세시 인질로 고구려에 체재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시기에 신라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호우총의 주인공은 신분이 비교적 높은 귀족의 묘로 여겨지며, 그 축조연대는 6세기 전반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壺杅塚·銀鈴塚(金載元, 國立博物館古蹟調査報告 1, 194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