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

석수

[ 石獸 ]

무령왕릉 출토. 높이 30cm

무령왕릉 출토. 높이 30cm

돌로 만든 동물의 상(像)을 말한다. 좁게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석조동물상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무덤의 둘레돌(護石)이라든가 석탑의 기단부 등에 놓여 있거나 부조(浮彫)되어 있는 동물조각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고 있다.

석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의 후한대(後漢代)에 후장(厚葬)의 풍습에 따라 묘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짐승을 조각하여 묘 앞이나 둘레에 세웠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풍습이 제도적으로 엄격하게 정착된 것은 당(唐)나라에 이르러서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에도 그와 같은 풍습이 전해져 석수가 조성되었음을 현존하는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백제 무녕왕릉(武寧王陵)에서 발견된 석수이다. 높이 31.5㎝, 길이 48.5㎝로 국보 제162호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의 이 석수는 진묘수(鎭墓獸)의 하나로 짐작되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신앙적 성격을 띤 상상의 동물로서 형태가 특이하다. 머리에는 쇠로 만든 뿔이 하나 있고 몸뚱이의 양측면에는 불꽃같은 날개가 표현되어 있다. 주둥이를 붉게 칠한 것을 비롯하여 온몸을 채색한 것이 거의 퇴색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뒷발 하나는 돌에 결이 난 부분으로 갈라져 떨어져 나갔으며 머리에 꽂은 뿔은 부식이 심하였기 때문에 출토 후 뿌리에서 잘려나가고 말았다. 각섬석질(角閃石質)의 돌로 제작되었다.

이밖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통일신라시대 이후 묘 앞에 석수를 세우거나 둘레돌로 석수를 배치하는 풍습이 성행함에 따라 현재 많은 예들이 남아 있다. 단독상으로 조성된 석수 중에서는 석사자상(石獅子像)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전 성덕왕릉(聖德王陵)·괘릉(掛陵)·흥덕왕릉(興德王陵) 앞의 석사자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우수한 조각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사자상은 또 불교적인 조형 미술품으로 많이 제작되어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의성관덕동석사자(보물 제202호)와 같은 원각상(圓刻像)도 있고, 화엄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화엄사원통전사자탑(보물 제300호)·사자빈신사지석탑(보물 제94호) 등의 사자상과 같이 석탑의 기단부에 이용된 것, 법주사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중흥산성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등의 사자상과 같이 석등의 받침으로 이용된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밖에 불상대좌(佛像臺座)라든가 석탑·부도(浮屠)·석등·석비 등의 기단 혹은 대석(臺石)에 양각(陽刻)하여 장엄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자 이외의 동물상으로는 석마(石馬), 석양(石羊), 석호(石虎), 석우(石牛) 등이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의 능묘 앞의 수호상으로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궁전 앞에는 석해태를 세워 화재예방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한편, 능묘의 둘레돌로 사용된 석수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십이지상(十二支像) 조각을 들 수 있다. 십이지신상은 자(子, 쥐)·축(丑, 소)·인(寅, 범)·묘(卯, 토끼)·진(辰, 용)·사(巳, 뱀)·오(午, 말)·미(未, 양)·신(申, 원숭이)·유(酉, 닭)·술(戌, 개)·해(亥, 돼지)의 12가지 동물을 상(像)으로 표현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능묘에 십이지신상이 조각된 것은 10여 군데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부조로 많이 표현되었으나 전 성덕왕릉의 십이지신상처럼 원각상도 있다.

석수는 궁전이나 능묘 등을 수호하는 조각상으로, 당시의 조각양식의 경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조각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능묘제도 및 왕궁제도 연구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시공테크, 1999년)
  • 文化財大觀 2-國寶2-(韓國文化財保護協會, 大學堂,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