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

김남식

[ 金南式 ]

요약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병자호란 때 고창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청주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청나라와의 치욕적인 화의 후 고향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출생-사망 1617 ~ 1681
본관 광산
군언
의촌
활동분야 정치, 학문
출생지 전북 고창군 고창읍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언(君彦), 호는 의촌(義村)이다. 고창현(高敞縣; 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출생하여 김집(金集 1574~165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의 명을 받들어 고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청주(淸州)에서 적병을 격파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려 하였으나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귀향하였다. 그 후 계령산(桂嶺山, 계당산) 아래에 집을 지어 학문에 정진하였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고,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여 그를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일컬었다. 1828년(순조 28) 이조참의에 증직되고,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에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 전북특별자치도 도문화재자료 제141호)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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