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의 영향과 반대투쟁

을사늑약의 영향과 반대투쟁

을사늑약의 체결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다. 때문에 을사늑약 체결의 사실이 알려지자 각지에서 일본에 대한 항쟁이 일어났다.

장지연(張志淵, 1864~1920)은 1905년 11월 20일자의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게재하여 일본의 흉계를 비판하며 조약 체결의 사실과 부당함을 널리 알렸다.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 이상설(李相卨), 종1품 이유승(李裕承), 법부주사(法部主事) 안병찬(安秉瓚), 원임의정대신(原任議政大臣) 조병세(趙秉世),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閉泳煥), 전참찬(參贊) 최익현(崔益鉉), 특진관(特進官) 이근명(李根命), 종묘제조(宗廟提調) 윤태흥(尹泰興), 승지(承旨) 이석종(李奭鍾), 유림(儒林) 이건석(李建奭) 등은 상소(上疏)로 조약 체결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상소가 효과를 얻지 못하자, 민영환은 유서를 남겨 국민에게 경고하면서 자결하였고, 뒤이어 조병세, 전참판 홍만식(洪萬植), 학부주사(學部主事) 이상철(李相哲), 평양대(平壤隊) 일등병(一等兵) 김봉학(金奉學), 주영공사(駐英公使) 이한응(李漢應) 등도 죽음으로 일본에 항거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항거하는 의병(義兵)도 일어나 전참판 민종식(閔宗植)이 홍주(洪州)에서 거병한 것을 비롯하여 전라도에서 최익현(崔益鉉)이, 경상도에서는 신돌석(申乭石)이, 강원도와 충청도에서는 유인석(柳麟錫) 등이 각각 의병을 일으켰다. 나철(羅喆), 오기호(吳基鎬) 등은 이완용, 박제순 등의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고종(高宗)도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등을 통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려 하였다. 1907년에는 이상설(李相卨)과 전 평리원 검사(平理院檢事) 이준(李儁) 등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의 헤이그로 밀사(密使)로 파견해 열강(列强)들에게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려 하였다. 하지만 한국 대표의 회의 참석은 거부되었고, 밀사(密使) 파견이 문제가 되어 고종(高宗)은 순종(純宗)에게 강제로 양위(讓位)되었다.

을사늑약은 체결 당시부터 국제법학계에서 무효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1906년 프랑스 파리법과대학의 교수인 F. 레이는 을사늑약이 협상 대표에 대한 고종의 위임장과 조약 체결에 대한 비준서 등 국제조약에 필요한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데다가 한글과 일본글로 된 조약문의 첫머리에도 조약의 명칭조차 없이 그대로 비어 있어 국제조약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1965년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과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한일협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제2조)고 규정하여 을사늑약이 다른 조약과 함께 이미 무효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한일협정 제2조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 을사늑약의 효력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을사늑약이 체결 당시부터 무효였다고 보지만, 일본에서는 1965년 협정 이후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한국은 국제 관습법(慣習法)에서 강제와 위협에 기초한 조약 체결은 무효로 하므로 을사늑약도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본다. 당시 국가를 대표했던 고종(高宗)의 승인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종이 친서(親書)와 밀사(密使) 등으로 국제 사회에 조약이 무효임을 꾸준히 밝혔다는 사실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와 위협에 기초한 조약 체결을 무효로 하는 국제 관습법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났으며, 1945년 ‘국제연합헌장’에서야 비로소 명문화되었으므로 1905년에 체결된 을사늑약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고종(高宗)에 대해 강제와 협박이 행해졌다는 역사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을사늑약의 실효성을 둘러싼 대립은 간도협약(間島協約) 등 1905년 이후 일본이 한국을 대리해 청(淸) 등과 체결한 조약의 효력과도 연관되므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