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향교

고양향교

[ Goyang Local Confucian School , 高陽鄕校 ]

요약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 1985년 9월 20일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고양향교

고양향교

지정종목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5년 9월 20일
관리단체 향교재단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 285번길 33-13 (고양동, 고양향교)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향교

최초의 설립연도는 확인되지 않으며, 1428년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西三陵) 자리에 향교가 새로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90년에 직제학(直提學) 정회(鄭淮)를 보내 고양향교의 생도인 이옥동(李玉同)·이옥석(李玉石) 형제의 사건을 추국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1535년에는 제사를 지낼 헌관(憲官)으로 당상관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기록들은 고양향교가 조선 전기부터 풍덕(豊德)·장단(長湍)·파주(坡州) 등의 향교와 더불어 도성 인근의 향교로서 조정에서 중시되었음을 보여준다.

1537년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장지가 서삼릉으로 정해지자 향교는 대자동의 고읍마을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되었다.

건축물은 내삼문(內三門)을 기준으로 전면의 낮은 곳에 명륜당(明倫堂)과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고, 후면의 높은 곳에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廡)·서무(西廡), 전사청(典祀廳)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양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과 동무·서무, 내삼문은 조선 후기의 건축기법을 보이고 있으나, 명륜당·전사청·외삼문 등은 6·25전쟁 당시 소실되어 새로 세운 것이다. 담장은 1970년에 보수되었고, 명륜당과 전사청은 1975년과 1981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1983년에는 외삼문과 향교 정면의 홍살문을 새로 세워졌고, 1988년에도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해서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5성(五聖)의 위패를 두고 있는데, 정면 3칸·측면 2칸의 크기로 면적은 58.5m²이다.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원형의 정평주추가 있으며, 기둥은 나무로 만든 둥근기둥이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익공과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동무·서무에는 ‘송조 2현(宋朝二賢)’으로 불리는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두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크기인데,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 한 칸씩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오늘날에는 교육은 담당하지 않고 매년 음력 8월 27일에 고양 유림이 주관하여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釋奠大祭)만 행한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역참조항목

고양동

카테고리

  • > > >
  • > > >
  • > > >

관련동영상

고양향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9호   고양향교가 설립된 시기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조선 전기부터 존립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5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되었다. 건축물은 내삼문을 기준으로 전면의 낮은 곳에 명륜당과 동재와 서재가 있고, 후면의 높은 곳에 대성전과 동무, 서무, 전사청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양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과 전사청은 1975년과 1981년에 다시 건립되었고, 1983년에는 외삼문과 향교 정면의 홍살문을 새로 세워졌다. 1988년에도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해서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