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묘

정충신 묘

[ 鄭忠信 墓 ]

요약 조선 중기의 무신 정충신의 묘.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정충신 묘

정충신 묘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5월 17일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대요한우물길 186-3 (지곡면)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地谷面) 마힐산(摩詰山)의 국사봉 중턱에 부인과 함께 쌍분으로 안장되어 있다. 정충신사당에서 서쪽으로 800m 떨어진 곳에 있다.

2개의 봉분 중앙 앞에 묘비가 있고, 상석 옆에 여러 문석인이 세워져 있다. 묘가 이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서울 길마재에서 평정한 공로로 진무1등공신이 되어 국사봉을 중심으로 45만평을 사패지지(賜牌之地)로 하사받았다.

정충신은 생존시에 아들과 지관을 대동하고 이곳을 유택으로 정해놓고 아들에게 자신이 사망하면 이곳에서 장사지내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문자로 공적을 미화, 찬양하거나, 시호를 청하지도 말고, 묘비와 석물을 세우지 말고 단지 그릇만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정충신(1576~1636)은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이후 장만(張晩)을 따라 청의 연경에 다녀왔으며, 1630년 평안북도 철산지방에서 일어난 유흥치의 난을 평정하였다. 1617(광해군 10)에는 오윤겸(吳允謙)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치밀한 전략가로서 청의 정세에 밝았기 때문에 늘 군비 확장에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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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묘 조선 중기 때 무장 정충신의 묘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0호 만운 정충신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의 나이에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신임을 받아 연락병과 척후병으로 종군했다. 의주에 머물던 병조판서 이항복을 만나 그의 주선으로 무과에 합격하여 무관이 되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공을 세웠으나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하여 유배되었다. 정충신은 1636년 5월 사망하여 서산시 지곡면 마힐산 국사봉 중턱에 묻였으며 그가 사망하고 7개월 뒤 12월에 청나라가 10만 대군으로 조선을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