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 Relics Related to Buddhist Monk Seosan in Daeheungsa Temple, Haenam , 海南 大興寺 西山大師 遺物 ]

요약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휴정(休靜) 서산대사(1520~1604)의 유물. 2002년 12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

지정종목 보물
지정일 2002년 12월 7일
소재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구림리)
시대 조선
종류/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2002년 12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산대사의 자는 현응, 호는 청허·서산, 속성은 완산최씨이다. 안주 출신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숭인(崇仁) 문하에서 승려가 되어 《전등록(傳燈錄)》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배웠다. 그 후 일선(一禪)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하였다. 1552년(명종 7) 승과(僧科)에 급제한 뒤 교종판사(敎宗判事)·선종판사(禪宗判事) 등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특명으로 팔도십육종도총섭이 되어 73세의 노령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 1천5백을 규합, 총수가 되어 활약하였다.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승병을 모집하여 왜적을 물리친 공로로 대흥사 경내에 건립했던 사액사당이 표충사이며, 1978년에는 여기에 서산대사유물관이 건립되어 선조, 정조대왕의 하사품과 대사의 유언에 따라 대흥사에 간직해 오던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서산대사가 사용하던 바리때, 칠보염주, 신발을 비롯하여 승병활동 때 사용한 승군단 표지와 소라나팔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교지와 대사의 친필이 기록된 서적, 대사가 남긴 금 병풍 등을 볼 수 있다. 대흥사 경내의 서산대사 유물관에 소장된 서산대사의 유물은 교지, 서산대사친필, 서산대사 의발 등이 있다.

교지 2매 중 하나는 1602년에 내려진 것으로 서산대사 휴정을 ‘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으로 임명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후대의 것으로 표충사가 건립된 때인 1788년(정조 12) 정조가 이전의 교지에 가증하여 표충선사라는 칭호를 내리는 내용이다. 서산대사친필은 서산대사가 4가(마조·백장·훈절·임제대사)의 선구를 요약하여 적은 것이다. 표제는 ‘대사어’라 되어 있고 속제목은 ‘정선4가록’이라 되어 있다. 1책으로 1∼6장은 서산대사의 친필이며 뒤에 사명당 유정의 친필이 덧붙여져 있다. 서산대사 의발은 염주 2종과 금란가사(金欄袈裟), 바리때와 수저이다. 금란가사는 240cm×90cm, 바리때는 큰 것이 입지름 21.6cm, 높이 9.6cm, 중간 것이 입지름 16.4cm, 높이 6.7cm인데 일부 파손되었으며, 작은 것이 12.3cm, 높이 5cm로 일부가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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