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남문 창의비

장성 남문 창의비

[ 長城南門倡義碑 ]

요약 임진왜란으로 순국한 의병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한 비.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장성 남문 창의비

장성 남문 창의비

지정종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85년 02월 25일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남북길 32(사거리 714)
시대 조선
종류/분류 석비
크기 높이 168cm, 너비 63cm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168cm, 너비는 63cm이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 714번지에 있다.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현 북일면 오산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국한 의사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802년(순조 2) 호남의 유림들이 건립하였다.

비문은 판서 홍양호(洪良浩)가 지었고, 서자는 황승원, 전서자는 김부도이다. 비는 사각의 좌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씌웠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이며 공포는 익공식이다. 비의 명제가 2개 기록되어 있는데, 전면 중앙에 종서 해서체로 “호남오산남문창의비”라고, 후면과 좌우측 양면의 비신 상단에 횡서 전서체로 “유명조선호남오산남문창의비”라 하였다.

오산 남문 창의는 1592년(선조 25) 7월 20일에 김경수(金景壽)·기효간(奇孝諫)·윤진(尹軫) 등이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아 11월 초단(草壇)을 설치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김경수를 맹주(盟主)로 추대하고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았다. 그후 의병군은 북으로 진군하여 직산·진성·용인 등지에서 많은 왜병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 비에 새겨진 77선열 가운데 승려 9명, 노복 1명도 기록되어 있다.

역참조항목

오산창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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