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진지

목포진지

[ 木浦鎭址 ]

요약 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에 있는 옛 진지.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목포진지

목포진지

지정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7년 1월 15일
관리단체 목포시
소재지 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 1-56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목포진은 목포영·목포대라고도 부르고,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명칭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인데, 1500년(연산군 6)에 초축하여 1502년에 완성되었고, 1895년(고종 21) 폐진되었다.

목포진은 폐진 직후인 개항 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 있었고, 무안감리서·일본영사관·해관으로 임시 사용되었다. 그후 진지 주변은 영국영사관기지로 편입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민가로 전용되었다.

현재 목포진지의 성이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진성은 대략 현 만호동 일대로 추측되며, 만호동 민가의 담장이나 축대가 당시의 성돌로 쌓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만호동 1의 56번지 권오현 앞 공터에 ‘목포진 유적비(木浦鎭遺蹟碑)’란 석비가 남아 있다.

진지에 대한 기록으로《태조실록》1397년(태조 6) 5월 임신조에 따르면 전라도에는 목포를 비롯한 4개의 진을 둔다고 하였다. 물론 이때 기록상의 목포는 현재의 목포와는 다른 지역이다. 전라우수영의 전신인 처치사(處置使)의 주둔지가 당시에는 무안현 대굴포(현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였다. 1432년(세종 14) 전라우도도만호(全羅右道都萬戶) 이각(李恪)이 목포만호가 대굴포까지 들어와 있어 불편하니, 지금의 목포로 옮겨 응변에 편리하게 해달라는 상주가 있었다.

세종실록》에는 전라도순찰사 정흠(鄭欽)의 계문에 본도 수영을 목포로, 목포의 병선을 황원(현재 해남군 화원리) 주량으로 옮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433년 목포 병선을 주량으로 옮기고, 1439년 현재의 자리에 목포 만호진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참조항목

목포시

역참조항목

만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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