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흥덕리 석실분

나주 흥덕리 석실분

[ 羅州 興德里 石室墳 ]

요약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 북쪽에 자리잡은 자미산의 남쪽에 축조되어 있는 백제의 돌방무덤[石室墳]. 1994년 1월 31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나주 흥덕리 석실분

나주 흥덕리 석실분

지정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94년 1월 31일
관리단체 나주시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고분로 607 (흥덕리)
시대 백제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1994년 1월 31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938년 발견되어 1939년 일본인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널방의 구조는 할석과 판석을 이용한 서벽 수직의 평천장식 돌방무덤이다. 이 고분은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2개의 돌방이 동·서에 나란히 만들어진 쌍실분으로서 두 널방 모두 길이 2.3m 내외, 너비 1m 내외의 규모인데 서쪽 널방의 폭이 약간 더 넓다.

두 널방 사이에 20∼30cm 두께의 점판암 판석 1매와 널길 부분에는 판석을 세워 동서 널방을 만들었다. 널방 축조는 북벽은 동, 서 모두 판석 1매씩으로 축조하고 동, 서 벽은 바닥에 각각 7개와 5개의 할석을 놓고 그 위로 할석을 4단으로 쌓았으며 중앙에는 판석으로 막았다. 두 널방 모두 널길과 배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조사 당시의 분구는 지름이 14m 정도였다. 널방 가운데에 폭 약 25cm, 길이 5m와 5.3m의 홈을 파고 잔자갈을 다져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돌방무덤은 그 자체가 추가장을 통한 합장이 가능한 구조를 가진 것이지만 흥덕리 고분은 두 개의 돌방을 나란히 배치하여 합장시킨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다.

유물은 동쪽 돌방에서만 출토되었는데 토기 1점과 은제관식 1점을 비롯하여 몇 점의 관못이 있어서 시신을 목관에 안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높이 16.5cm, 입구 지름 4cm의 광구병(廣口甁)과 은제좌금구(鐵製座金具) 1편, 은제전립병 1편, 철못 11점 등이 출토되었다. 은제관식은 다른 지역의 백제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유형일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의복 제도를 보면 ‘6품에 해당하는 나솔(奈率) 이상은 은화(銀花)로 장식한다’는 내용이 있어 흥덕리 돌방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로부터 나솔 이상의 관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돌방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미루어볼 때 흥덕리 돌방무덤의 연대는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반남 고분군은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옹관고분의 대표적 고분군으로 자미산을 중심으로 대안리(12기), 신촌리(9기), 덕산리(10기)에 30여 기가 분포한다. 일제강점기의 조사는 이 고분군의 성격이 왜인의 무덤이라거나 한반도에서 가장 일본적인 색채가 짙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영암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 학자들에 의해 옹관고분이 활발히 조사되어 영산강 유역의 토착적인 묘제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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