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정재사

반구정재사

[ 伴驅亭齋舍 ]

요약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이굉(李肱)이 지은 정자.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반구정재사

반구정재사

지정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92년 7월 18일
관리단체 고성이씨법흥문중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81-7 (정상동)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으며, 당초의 건물은 1945년의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 있는 정자는 1946년에 중건한 것이다. 반구정재사에는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퇴계(退溪) 이황(李滉)·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이굉의 호는 반구옹(伴鷗翁)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안동 임청각을 지은 이명의 여섯째 아들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예빈시별제(禮賓侍別提)에 임용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향리로 돌아와 1530년(중종 25)경 이 정자를 짓고 학문과 자연을 즐겼다.

원래 이명이 안동 임청각을 지은 목적은 귀래정 동쪽의 수려한 강산을 즐겼던 그가 이 곳에 정자를 짓고 형제들과 노경의 단란함을 즐기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아들이 선친의 뜻을 대신 이루게 된 것이다.

당시 안동유림(安東儒林)이 자주 시회(詩會)와 향회(鄕會)를 열어 선비의 출입이 잦았고, 자연히 숙식자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동·서재(西齋)를 비롯하여 장판각(藏板閣), 주사(廚舍)까지 중축하게 되어 서원 건축에 강학공간(講學空間)을 따로 조성하게 되었다.

이굉의 아들 이용(李容) 역시 벼슬에 뜻이 없어 이 곳에 은거하니, 고성이씨 3세가 모두 벼슬을 버리고 은둔한 장소가 되었다. 후세에 이를 기념하여 고성이씨삼세유허비(固城李氏三世遺墟碑)를 세워 기리고 있다.

참조항목

안동시, 누정

역참조항목

서구동, 정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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