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Gilt-bronze Seated Vairocana Buddha of Bunhwangsa Temple, Gyeongju , 慶州 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 ]
- 요약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의 분황사 보광전에 있는 약사여래입상이다. 2022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지정종목 | 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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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2022년 2월 22일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구황동 312)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크기 | 높이 3.45m |
조선 후기 작품으로, 높이 3.45m의 청동제 불상이다. 1800년대 조성된 분황사 보광전(寶光殿) 안에 안치되어 있다.
분황사에는 원래 75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에 사는 강고내말(强古乃末)이 주조 봉안한 무게 30만 6,700근의 동(銅)으로 만든 신라 최대의 불상인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座像)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엄청난 대불(大佛)은 지금 흔적조차 없다.
1998년 3월 13일부터 보광전을 개축하기 위하여 건물을 해체하였는데, 3월 24일 그 안에서 상량문과 벽화가 발견되었다.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의 보광전은 1680년(강희 19) 5월 3일 중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현재의 약사여래상도 만력 기유년, 즉 1609년에 동 5,360근으로 조성하였다고 나와 있다.
이 약사여래동상의 왼쪽 손 위에 놓인 약함의 뚜껑에는 주사(朱沙)로 〈중수개금화원(重修改金畵員) 육행서홍(六行瑞弘) 건륭 39년(乾隆三十九年) 을미 4월 25일 조성야(乙未四月二十五日造成也)〉라고 쓰여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1774년(영조 51)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전형적인 18세기 후반의 양식과 조형 기법을 따르고 있다. 육계는 낮고 작으며, 상호(相好)는 둥글고 육감적이며, 얼굴은 동안(童顔)이다. 이 때문에 종교적 신비감이나 자태를 느낄 수 없는, 다분히 세속적인 요소가 많이 보인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두꺼운 편이고, 의습(衣褶)은 유려하지 않으며, 치마띠는 화형(花形)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는 장식 없는 판석(板石)으로 되어 있다. 약합(藥盒) 뚜껑의 파손 부분을 살펴보면 건칠제(乾漆製)임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불상 전체도 건칠제일 가능성이 높다.
약사여래좌불(藥師如來座佛)의 정식 이름은 약사유리광세계부처님 또는 대의와울이라고 한다. 동방으로 갠지스강 모래알 수의 열 배에 해당하는 국토를 지나 정유리정토라는 곳에 계신다고 한다. 원래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등에서 주로 설법되는 이 부처님은 보살이었을 때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하여,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