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전공비

김시민 전공비

[ 金時敏 戰功碑 ]

요약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김시민 전공비

김시민 전공비

지정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72년 2월 12일
관리단체 진주시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크기 높이 277㎝, 너비 99㎝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진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수량은 1기이며, 높이는 277㎝, 너비는 99㎝이다. 진주전성각적비(晋州全城却敵碑)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중 3대대첩의 하나인 진주싸움을 승리로 이끈 장군 김시민(金時敏)의 전공을 기록하기 위하여 1619년(조선 광해군 11) 7월에 세운 비이다.

당시 김시민은 진주목사로서 판관(判官) 성수경(成守慶),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 등과 함께 주도면밀한 작전을 펼쳐 왜적을 격퇴하였다. 비문에는 1,000명도 되지 않은 병력으로 10만 군대를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다른 기록에는 3,800명의 적은 병력으로 2만여 명의 왜적을 격퇴하고 진주성을 지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적은 군사를 이끌고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영남에서 호남으로 나아가는 길목인 이곳 진주성을 사수(死守)함으로써 왜적의 호남 진출을 봉쇄하여 우리측에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고 전열을 가다듬은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 고을 백성들의 열망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성균관 진사 성여신(成汝信)이 글을 짓고 성균관 생원 한몽인(韓夢寅)이 글씨를 썼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석비의 형태로 현재 진주성 내에 단층 맞배지붕비각을 마련하여 보존하고 있다.

참조항목

김시민, 비석, 진주시

역참조항목

성지동, 본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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