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큰줄 땡기기

의령 큰줄 땡기기

[ 宜寧─ ]

요약 경상남도 의령 지방에 1800년경부터 전승되어 오는 전통 민속놀이.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종목 경상남도 무형유산
지정일 1997년 01월 30일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기예능보유자 김점록
종류/분류 민속놀이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김점록이 기능보유자로 있다. 약 200년간 연례행사로 계속 되다가 일제강점기6·25전쟁 때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1972년부터 의령 홍의장군축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전국 최대 규모의 큰줄로 보존, 전승 가치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남강(정암강)을 경계로 물아래, 물위 편으로 나누어 물아래는 월촌·법수·군북 등이, 물위는 의령·가례·용덕 등이 편이 되어 대결하였다고 추정한다. 그뒤 1800년경 의령의 고을행사로 정착되었다. 의령군청에서 의병탑으로 향하는 큰길을 사이로 의령동동·남산동·무전·용덕·정곡 일부가 물아래편이고, 의령서동·중동·상중하리·가례·화정·칠곡·대의 일부가 물위편이다.

줄은 각 마을에서 키크고 실한 으로 바지랑대를 설치하여 힘들여 꼰다. 이것을 줄드리기라 하는데 세 가닥의 길이가 90∼100m로 이것이 마을마다 2개의 작은 숫줄, 작은 암줄이 된다. 이 작은 줄들을 모아 놀이 2∼3일 전에 100여 명이 동원되어 큰줄을 만다. 물아래편이 암줄로서 쌍줄에 큰고를 달고, 물위편이 숫줄로 방아채(방아쇠·비녀)를 꽂을 수 있도록 만든다. 지름이 5장 정도에 길이가 200자 이상이며 곁줄은 양편 모두 100가닥이 넘는다.

놀이는 정월대보름에 농악대와 흰옷에 미투리·짚신을 신은 수백의 농민을 늘어 세운 채 시작된다. 양편 장수가 말에 탄 채 대기를 흔들며 경험 많은 원로의 지휘로 전력을 다해 고를 건다. 고를 걸지 못하면 물아래편이 지는 것이 관례이며, 비녀를 꽂지 못하거나 승부가 가려지지 않으면 2월 초하루에 한번 더 겨룬다.

물아래가 이기면 그 이듬해 대풍이 들고 물위편이 이겨도 우순풍조하여 역시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대부분은 승부가 가려지지 않아 서로 이겼다 우기며 흰 상여를 앞세우고 소복을 한 상주가 호곡으로 뒤따르며 상대편 중심도로를 행진하는 뒷놀이를 하였다. 격년이나 5년 마다 개최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도 2차례 개최되었으나 뒷놀이는 없어졌다. 최근에는 격년이나 때마다 분위기를 보아 군민의 친목단결을 위해 의령 홍의장군축제의 중심행사로 4월 22일 공설운동장에서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