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문익점 묘

산청 문익점 묘

[ 山淸 文益漸 墓 ]

요약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에 있는 문익점의 묘. 1983년 8월 24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산청 문익점 묘

산청 문익점 묘

지정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일 1983년 8월 24일
관리단체 남평문씨문중
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1983년 8월 24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문익점은 1331년(고려 충혜왕 2) 강성현(江城縣:지금의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였다. 1363년 좌정언(左正言)으로 있다가 계품사(啓稟使) 이공수(李公遂)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 이때 원에서는 충선왕의 서자 덕흥군(德興君)이 왕위에 오를 음모를 꾸며 원 순제(順帝)의 허락까지 얻어놓고 있었다. 그들 일파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문익점이 동조하지 않자 그들의 위계에 의해 그는 윈난[雲南] 지방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목화 재배와 면직물 가공을 목격하였다.

귀양에서 풀려나 귀국하면서 목화씨를 숨겨와 고향에서 이를 재배하는 데 성공하자 목화 재배를 널리 전파시켜 국민의 의생활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강성군(江城君)에 추봉되었으며 세조 때에는 사당인 노산정사(蘆山精舍)가 건립되었다.

묘의 형태는 사각형의 분묘로 주위는 상석·비·문인석·망주석·석등이 갖추어지고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역참조항목

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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