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척화비

가덕도 척화비

[ 加德島 斥和碑 ]

요약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척화비. 1993년 2월 1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가덕도 척화비

가덕도 척화비

지정종목 부산광역시 기념물
지정일 1993년 2월 1일
소장 강서구
관리단체 강서구
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56-1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크기 면적 25㎡

1993년 2월 1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건축공사 중 출토되었다. 인근 성북 선창마을회 소유지에 세웠다가 1995년 12월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재료는 화강암이며, 크기는 길이 4자 5치, 너비 1자 5치, 두께 8치 5푼이다. 비석 표면에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라는 주문(主文)을 크게 새기고, ‘계오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자로 새겨 온 백성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양인(洋人)을 배척하기 위해 경향 각지에 세운 비석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쇄국의 결의를 다지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척화비를 세웠다. 그후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중국 청(淸)으로 납치되고, 통상수교거부정책이 풀리자 대부분의 비는 철거하거나 파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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