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남산 봉수대
[ 機張 南山 烽燧臺 ]
- 요약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기장 남산 봉수대
지정종목 |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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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5년 12월 15일 |
관리단체 | 기장군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52번지 |
시대 | 고려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
크기 | 면적 28,185㎡, 봉돈 지름 2.4m, 둘레 9m |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봉대산의 가장 높은 곳에 돌로 둥글고 높게 단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뾰족한 산봉우리처럼 만들어져 멀리서 봐도 모습이 수려하다. 985년(성종 4)에 설치하여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면적은 28,185㎡이고, 중앙의 봉돈은 지름 2.4m, 둘레 9m의 돌로 쌓여 있다.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의 화로가 있었다.
경상도 지역의 봉수망 중 간봉 제8호인데, 왜적의 침입을 제일 먼저 알리는 곳으로, 남으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의 남쪽 산봉우리에 있는 간비오 봉화대에, 북으로는 장안읍 임랑리 뒷산에 있는 임랑 봉화대 및 이길 봉수대로 연락하였다.
불빛과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가 정해져 있었고, 궂은 날씨 때문에 신호가 불가능하면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 봉수대의 봉군은 200명이며, 봉수군의 직제는 도별장 1명을 두고, 그 밑에 다시 별장 5명~10명, 감고(監考) 1명, 봉군은 100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봉수대는 나라에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여 군사정보를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