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사

문충사

[ 文忠祠 ]

요약 한말의 우국지사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한말의 사당.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문충사

문충사

지정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9년 3월 18일
소재지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73번길 44 (용운동)
시대 대한제국기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크기 사당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龍雲洞)에 있다. 한말에 일제에 항거한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宋秉璿)·송병순(宋秉珣)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 1908년 충청북도 영동(永洞)에 건립되었는데, 송병선의 순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66년 그의 순국지인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고, 그 옆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용동서원(龍洞書院) 현판이 걸린 강당이 있으며, 그 뒤의 내삼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용동서원은 1970년에 건립되었는데,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송병선은 송시열(宋時烈)의 9대손으로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후 서연관·경연관·대사헌을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상경하여 고종에게 조약을 파기하고 박제순(朴齊純) 등 을사오적의 처단을 진언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헌병대에 의해 대전으로 이송되었다.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을사오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바라는 상소문을 올리고 음독 순국하였다. 의정대신에 추증되었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송병순은 1888년(고종 25)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학문연구에 몰두하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격문을 지어 8도에 돌렸다.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고 통분하여 형의 뒤를 따라 음독 자결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역참조항목

송병준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