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 봉수대 터

목멱산 봉수대 터

[ 木覓山 烽燧臺 터 ]

요약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에 복원한 조선시대 봉수대 터. 1993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목멱산 봉수대 터

목멱산 봉수대 터

지정종목 서울특별시 기념물
지정일 1993년 9월 20일
관리단체 중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크기 면적 237.27㎡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목멱산(남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전국의 봉수가 최종적으로 모두 목멱산 봉수대에 전달되도록 하였는데, 목멱산 봉수대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목멱산에 설치된 봉수대는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4년까지 거의 500여 년 동안이나 사용되었다. 봉수대의 명칭은 현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木覓山) 봉수라고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하였다. 목멱산 봉수대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5개소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현재의 목멱산 봉수대는 《청구도》 등 관련자료를 종합하고 고증하여 현 위치에 1개소를 복원한 것이다.

봉수란 근대적 통신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국가적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였던 제도이다. 변방에서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 그 사실을 가까운 관아와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알려 위급한 사태에 빨리 대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러 곳에 설치한 봉수대를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한국의 경우 봉수는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였다. 평상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접근하면 셋, 경계를 침범하면 넷, 경계에서 적과 아군이 접전 중이면 다섯을 올리도록 하였다. 서울특별시는 목멱산 봉수대 이외에도 무악동 봉수대, 아차산 봉수대를 복원하고 각각의 봉수대 터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각각 지정하였다. 목면산(남산) 봉수대 터는 1993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역참조항목

예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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