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동

송정동

[ Songjeong-dong , 松亭洞 ]

요약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 있는 동.
송정동

송정동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면적(㎢) 5.19㎢
인구(명) 4936명(2008)

면적 5.19㎢, 인구 4936명(2008)이다. 북쪽에 삼봉산이 있고, 남쪽에 전천(箭川)의 맑은 물이 동류하여 동해로 흘러들며, 삼봉산의 줄기가 뻗어내려 마을의 뒷담이 되고, 울창한 솔숲이 에워싸고 있어 아늑한 어촌이었으나 북방교역의 중심이 될 북평공단이 조성되고, 북평항을 크게 확장한 동해항이 생김으로써 동해시의 산업기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삼척군 도하면의 지역으로서, 솔난데·솔난곳·송생처(松生處)라고 하다가 변하여 송라정(松羅亭<汀>·松蘿亭)·송정(松亭) 또는 송음(松陰)·송호(松湖)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송정리(松亭里)라고 하여 북삼면(북평읍)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에 동해시가 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치고, 용정1·2리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송정동은 법정동인 송정동·용정동(북삼동 관할구역 제외)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정동인 용정동(龍井洞)은 삼척군 도하면의 지역으로서, 동북쪽에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추(龍追)가 있고, 마을의 안산(案山)인 구미동의 봉우리에서 용미(龍尾)가 나와 달렸다고 하여 용장(龍場)이라고 하다가 변하여 용정(龍井·龍亭)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봉오골(봉오곡)·오미(오뫼·오산)·양짓말(양지촌)·왕축안(제내동)·메밑(산저) 등을 병합해 용정리(龍井里)에 편입되었다.

삼척군 도하면(道下面) 면사무소가 있다가 1914년에 도하·도상(道上)·견박(見朴)의 3개면을 통합하여 북삼면(北三面:북평읍)이 됨으로써 폐지되었고, 용정마을은 1937년에 북삼화학공장 부지가 되어 주민들을 다른 지방으로 옮기게 하여 없어지고, 일부 주민은 해변의 오미(오산동)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동해항을 축조하기 위하여 준설한 모래로 오미의 동쪽 바다를 메워 약 33.3㎢의 평야가 새로 생겼다.

주거에 비하여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송정동 중앙부를 관통하는 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송정파출소·동해소방서·도해레이더기상대· 송정동우체국·출입국관리사무소 동해출장소·세관북평동 감시초소·국립식물검역소 동해출장소·동해지방 해양수산청 등 공공기관과 동해항여객터미널·동해화물터미널·농산물시장 등이 있다.

동해항은 영동지방의 관문으로서 묵호항의 보조 항구였던 북평항(北坪港)을 크게 확장하여 1979년에 시멘트 출하 전용 부두시설을 갖춘 공업항으로 개항하였는데, 국제 상선·여객선, 해군함정까지도 정박할 수 있어 현재 부산항·인천항·포항항·울산항 다음으로 큰 항구가 되었다. 또한 동해시가 산업기지로 발전하는 데 큰 몫을 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북방교역의 중심 항구로 개발되었다.

용정 동쪽 해안을 감추사의 이름을 따서 '감추해안'이라고 하는데,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절벽 위 산에는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약수가 솟아난다. 신라 진성여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백풍병(白風病)에 걸려 고승의 설법에 따라 동주감추(東州甘湫)에 와서 석굴 2칸을 얻어 불상을 안치하고 매일 약수로 목욕하고 북산(北山), 용산소(龍山沼)에 기도한 결과 병이 완치되자,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석실암(石室庵)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후 절은 없어지고 옛 석굴 흔적만 남아 있어 신도들이 새로 절을 지었는데, 그 절도 1959년에 해일로 유실되어 1965년경 다시 지어 감추사라고 하였다.

선정비로는 송정동 입구에 관찰사 이유신(李裕身)의 영세불망비, 조선 영조 때 삼척부사 이최중(李最中)의 선정비와 홍명한(洪名漢)의 거사비(去思碑), 철종 때 강릉부사 이유응(李儒膺)의 영세불방비가 있고, 인조 때 보사원종공신 동지충추부사 송재(松齋) 홍응부(洪應溥)의 신도비각이 있으며, 효열 정문으로, 약혼 중에 임진왜란을 맞아 죽음으로써 정조를 지킨 열녀 전주 최씨의 정문이 있는데, 헐어져 1986년에 다시 세운 열녀비각이 있다. 1802년(순조 2)에 다시 세운 조선 광해군 때 효자 금부도사 홍양해(洪洋海)의 정문과 효자 정원화(鄭元和), 그의 처 효열부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효열비각이 있으며, 1882년(고종 19)에 세운 효자 김응위(金應渭)의 정문이 있다.

송정동 333-4번지인 전천의 북쪽 끝에서 민무늬토기·회백색 토기의 조각 등이 발견되고, 1972년에 송정파출소의 신축 건물 공사 중에 고인돌 3기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서 간석기돌칼 1점, 돌화살촉 6점이 출토되고, 그 전에도 돌꺾창[石戊]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강원도 향토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중에 있다. 메밑(산저) 뒤 '성재'에는 '용정고성(龍井古城)'이 있었다는데, 현재 삼척산업주식회사 서쪽 산능선에 석축과 토성의 흔적만 남아 있다. 당말재(당재)에는 역참(驛站)이 있었다 한다. 용정동 동남쪽 전천하구 바닷가에 할머니 모양인 높이 2m·둘레 3m의 '할미바우(마고암)'가 암반 위에 얹혀 있는데, 한 사람이 흔들거나 열 사람이 흔들거나 똑같이 흔들거린다.

송정우체국 일대를 송라서당(松蘿書堂)이 있었으므로 '서당구비(서당촌)'라고 하였다. 삼척부사를 지낸 성암 김효원(金孝元)과 미수 허목(許穆)을 배향하는 경행서원(景行書院)이 1828년(순조 28)에 삼척에서 옮겨 와 있다가 189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

참조항목

동해시, 동해항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