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한문학

조선의 한문학

한글이 창제되고 보급되었다고는 하여도 조선의 지배계층에서는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초기의 한문학은 사장(詞章)을 좋아하는 관료 문신들에 의해 발달하였는데, 서거정은 《동문선(東文選)》을 펴내 한국의 역대 시문을 정리하였다. 한편, 고려 이래의 설화문학이 계승 발전되었으며, 특히 《필원잡기(筆苑雜記)》 《동인시화(東人詩話)》 《용재총화(傭齋叢話)》 등은 대표적 작품들이다.

설화문학을 크게 발전시킨 이는 김시습(金時習)으로, 중국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모방하여 한국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 16세기에는 어숙권(魚叔權)이 《패관잡기(稗官雜記)》를 지어 당시 사회를 비판하였으며, 임제(林悌)는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시와 산문을 써서 당시 사회의 모순과 유학자들의 사대사상을 비판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한문학은 크게 발달하여 문장에서는 이정구(李廷龜) ·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 등이, 한시에서는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이서구(李書九) 등이 문호로서 이름을 떨쳤다. 18세기의 박지원(朴趾源)은 문학창작의 주체를 양반뿐만 아니라 서민에까지 확대시켰고, 그 형식도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양반전(兩班傳)》 《민옹전(閔翁傳)》 등이 유명하다. 19세기에는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김병연(金炳淵)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